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자문위원들과의 통일대화에서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등을 언급하자 웃음짓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법적용어 아니란 뜻” 밝혔지만
박대통령 개각 발표 앞두고
임명제청권 행사 못하는
현실 상황 의식했나 분석도
박대통령 개각 발표 앞두고
임명제청권 행사 못하는
현실 상황 의식했나 분석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으며 ‘화합과 소통’ 부재의 우려를 낳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총리 지명 다음날인 11일에는 “책임총리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선을 그어, 총리직을 수행할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책임총리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대선 공약이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전 직접 자신의 제네시스 차량을 몰고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했다. 그는 ‘책임총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책임총리, 그런 것은 저는 지금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답했다. 그는 오후에 서울대에서 기자들을 만나서도 ‘책임총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나’라는 질문에 “책임총리라는 게 뭐가 있겠나”라고 했고, 한 석간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도 “(나는) 책임총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책임총리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겠다며 여러차례 약속한 내용이다. 국무위원 인선 때 총리가 후보자를 3배수 제청하게 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분산한다는 게 핵심이다.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87조의 권력 분산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문 후보자는 오후 늦게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총리실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어 “‘책임총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 취지는 법에서 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라며 “총리로 임명된다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권한과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자생활 30여년 대부분을 정치 분야를 담당해 정치인들의 ‘상징적인 용어’에 익숙하고 정치학 박사이기도 한 문 후보자가, 법적 용어가 아니어서 그런 답변을 내놓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문 후보자의 발언은 문 후보자 스스로가 책임총리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는 추측과 동시에 박 대통령이 12일 내각 일부를 교체하는 인선안을 발표할 예정인 점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시한부’ 총리에 불과한 정홍원 총리의 제청을 받아 장관 등 국무위원을 지명하는 상황에 대한 표현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문 후보자는 후보자 발표 전날인 9일 지명 사실을 통보받았고, 이 때문에 자신이 총괄할 국무위원들의 인선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책임총리’ 공약을 내던지고 과거 ‘나홀로 인사’ 스타일을 되풀이했고, 문 후보자는 이전 정홍원 총리처럼 ‘받아쓰기 총리’, ‘대독 총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정치권에선 문 후보자의 발언을 두고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나는) 책임총리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지난달 22일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국가가 바른길을 가도록 소신을 갖고 대통령께 가감없이 진언하도록 하겠다”며 ‘책임총리’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책임총리를 하겠다”고 해도 책임총리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본인 스스로 “책임총리가 뭔지 모른다”고 말한 것은 애초에 책임총리를 할 의사도 없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태섭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 후보자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또다시 ‘대독 총리’ 역할을 하려는 것인가. 여론에는 귀를 닫은 채 청와대만 바라보고 해바라기 행보를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지극히 오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외현 석진환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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