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 태도 논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30일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을 제안하며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 이행’을 앞세운 것은,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기초공천 폐지를 ‘정치쇄신’ 분야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기초공천 폐지 법안을 내놓은 것도 옛 민주당이나 안철수 대표가 아닌, 오히려 새누리당이 먼저였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기초공천 폐지’는 당시 제3후보로 떠올랐던 안철수 후보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정치쇄신’을 요청하는 유권자들을 겨냥해 기초공천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직전인 2012년 11월6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발표하며,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의 기초공천 폐지 공약을 수용했던 내용보다 한발 더 나갔다. 문 후보는 기초의원 공천만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에 비해, 박 대통령은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 공천까지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보름 뒤인 11월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기초광역의원 결의대회 자리에서도 “기초의원·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기초의회·단체가 중앙정치의 간섭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지방정치를 펼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지방선거가 있는 2014년에 접어들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본격적인 공약 파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일찌감치 “(기초공천 폐지는) 대선 당시 공약으로, 신중하지 못한 점이 있다”며 노골적인 공약 철회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는 불리한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침묵’을 유지하는 대응 방식을 이번에도 되풀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이나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등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심 복지 공약의 후퇴에 대해서는 “국가재정의 문제”, “여건이 회복되면 다시 추진” 등의 설명과 사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치쇄신 분야의 공약 파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대신 내부적으로만 ‘기초공천 폐지는 공직선거법 개정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여야간 논의로 해결할 문제’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대선 공약’ 문제를 국회로 떠넘기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집권 초기 청와대의 의중이 곧 여당의 당론과 직결되고 있는데도 책임을 회피하는 ‘자기부정’적 태도라고 지적한다.
‘기초단체장 공천까지 폐지’ 약속
야당후보보다 더 나간 것이었지만
지금껏 어떤 설명·입장도 안밝혀
‘국회서 여야 논의로 풀라’ 뒷짐
새누리 의총선 ‘공천 유지’ 확정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기초공천 폐지 공약이 지방정치 활성화 등을 위한 정치 철학 때문이 아니라, 대선 때 야권 후보들의 정치쇄신 논의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계산의 결과’라는 비판을 키우고 있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 야권의 ‘진보 어젠다’를 선점한 뒤 당선 이후 이를 소홀히 하듯, ‘기초공천 폐지’도 이를 수용해 여야 후보간 논점을 흐린 뒤 당선 뒤에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초공천 폐지 공약은 복지 분야처럼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지도 않고, 집권세력의 결단만 있으면 된다는 점에서 공약 파기가 의도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이중적 태도도 문제다. 새누리당의 이명수 의원은 안철수 후보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거론하기 전인 2012년 7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법안을 가장 먼저 발의했다. 현 새누리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도 안 의원의 제안이 나오기 전인 그해 9월 같은 당 중진인 이재오 의원과 공동으로 기초공천 폐지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전당원 투표제를 실시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정했지만, 새누리당은 지난 1월 의원총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유지 방침을 확정했다. 다만 여론의 비판을 피하려고 국회 정치개혁특위로 이 사안의 결정을 넘긴 뒤 특위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 사안을 어물쩍 넘기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위한 법안이 6개 제출돼 있고 이 가운데 5개 법안이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KFC #3] 공천폐지와 ‘안철수 딜레마’
야당후보보다 더 나간 것이었지만
지금껏 어떤 설명·입장도 안밝혀
‘국회서 여야 논의로 풀라’ 뒷짐
새누리 의총선 ‘공천 유지’ 확정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기초공천 폐지 공약이 지방정치 활성화 등을 위한 정치 철학 때문이 아니라, 대선 때 야권 후보들의 정치쇄신 논의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계산의 결과’라는 비판을 키우고 있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 야권의 ‘진보 어젠다’를 선점한 뒤 당선 이후 이를 소홀히 하듯, ‘기초공천 폐지’도 이를 수용해 여야 후보간 논점을 흐린 뒤 당선 뒤에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초공천 폐지 공약은 복지 분야처럼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지도 않고, 집권세력의 결단만 있으면 된다는 점에서 공약 파기가 의도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이중적 태도도 문제다. 새누리당의 이명수 의원은 안철수 후보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거론하기 전인 2012년 7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법안을 가장 먼저 발의했다. 현 새누리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도 안 의원의 제안이 나오기 전인 그해 9월 같은 당 중진인 이재오 의원과 공동으로 기초공천 폐지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전당원 투표제를 실시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정했지만, 새누리당은 지난 1월 의원총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유지 방침을 확정했다. 다만 여론의 비판을 피하려고 국회 정치개혁특위로 이 사안의 결정을 넘긴 뒤 특위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 사안을 어물쩍 넘기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위한 법안이 6개 제출돼 있고 이 가운데 5개 법안이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KFC #3] 공천폐지와 ‘안철수 딜레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