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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미술관과 김건희 여사의 상관관계는?

등록 2022-08-16 12:58수정 2022-08-16 16:12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 회복’이 갑작스레 ‘문화예술역사복합공간’으로
“김 여사, 청와대 소장 미술품 정리·일반 공개에 기여 가능” 관계자 발언과 연관 있나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7월21일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8월10일 청와대 본관 앞에 공연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7월21일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8월10일 청와대 본관 앞에 공연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인 2022년 1월27일 정치 분야 공약을 발표하며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광화문으로 옮기고, 기존 청와대 부지는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부지 활용에 대한 질문엔 “역사관을 만들거나 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러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약속은 취임 석 달 만에 뒤집혔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7월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주요 건물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여러 전문가와 국민 의견’은 아직 거의 듣지 않은 상태다. 문체부는 청와대를 ‘프리미엄 근·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본관과 관저는 상설 전시장, 영빈관은 특별 기획 전시장, 녹지원 등은 야외 특별 전시장, 춘추관은 대관 특별 전시장으로 바꾸겠다는 안이다. 청와대 주요 공간을 모두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계획이다.

다만 문체부는 본관과 관저, 옛 본관 터의 일부는 대통령의 상징 공간으로 만들고, 문화재와 녹지원은 잘 보존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청와대를 국민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기획해달라”고 문체부에 지시했다.

이런 청와대 미술관 조성 계획은 시민 의견과도 거리가 멀다. 7월13일 문화재청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3.3%의 시민이 ‘청와대를 역사 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6월22~26일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만 15살 이상 관람객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였다. 63.3% 중에 ‘대통령의 삶과 역사가 살아 있는 현재 모습 그대로 원형 보존’이 40.9%, ‘과거~현재의 역사와 국가유산이 보존된 근대 역사문화 공간 조성’이 22.4%였다. 문체부가 추진하는 청와대 미술관과 비슷한 ‘박물관 또는 전시관 등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 조성’은 15.2%의 시민만 요구했다.

영빈관은 내부가 가장 아름다운 청와대 건물로 꼽힌다. 2022년 8월10일 시민들이 영빈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영빈관은 내부가 가장 아름다운 청와대 건물로 꼽힌다. 2022년 8월10일 시민들이 영빈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시민 63% “청와대를 역사 공간으로 보존해야”

문체부의 업무보고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활용 방안은 열려 있었다. 윤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3월20일)과 윤 대통령 청와대 활용 방안 발표(3월3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10대 국정과제(초안) 발표(5월3일)까지 공연·전시·체육·역사·공원·문화재 공간 등 다양한 청와대 활용 방안이 제안됐다.

5월3일 대통령직인수위의 ‘윤석열 정부 110대 과제’를 보면,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는 “청와대는 전문가와 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구체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훼손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을 회복해 청와대를 세계적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청와대 일대의 핵심 유적 발굴과 복원 정비 기간은 2023~2026년 4년 동안으로 계획됐다. 이때까지 문체부는 청와대 활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문체부가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은 7월21일 대통령 업무보고였고, 이 내용은 그다음 날 발표된 120대 국정과제(최종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공동으로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보존하면서 국민의 ‘문화예술역사복합공간’으로 활용하고, 문화재 기초 조사 및 정비를 하겠다”고 보고했다. 유적 발굴과 복원 기간 4년은 삭제됐다. 5월3일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 회복’이었던 청와대 활용 방안이 7월21~22일 `문화예술역사복합공간’으로 급변한 것이다.

‘청와대 미술관’이라는 방안이 나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눈에 띄는 점은 김건희 여사다. 김 여사는 문화기획사인 코바나컨텐츠의 대표로 일하며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알베르토 자코메티, 야수파 걸작 등 미술·건축 전시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전부터 김 여사가 ‘청와대 소장 미술품’의 활용에 참여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22년 4월27일 <연합뉴스>는 김 여사 쪽 관계자가 “김 여사가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정리하고 일반에 공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가 김 여사 주변에서 비공식으로 오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의 일, 문체부에서 결정한 일”

윤 대통령 취임 뒤에도 미술이나 전시 관련 김 여사의 활동은 계속됐다.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관람과 환영 만찬을 할 때 김 여사가 함께했다. 이어 김 여사는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도 윤 대통령과 동행해 ‘케이(K)-패션 전시회’, 소피아 왕비 국립미술관 등을 방문했다.

문체부가 정부 부처 가운데 청와대 활용 방안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청와대 미술관’ 방안을 그린 시기는 5~6월이었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5월16일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청와대 활용 방안이 연구됐다. 그때부터는 문화재청과 얘기할 때도 문체부가 청와대 활용 부분을 다 맡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문체부 관계자도 “청와대 활용 방안을 둘러싼 내부 논의는 청와대가 개방된 5월부터 시작됐다. 6~7월부터 문체부는 대통령실, 문화재청과 논의해왔다”고 밝혔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문체부가 갑자기 ‘청와대 미술관’ 조성을 결정하면서 김 여사가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했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김 여사가 청와대 미술관 조성 결정에 관여했다는 추정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이고, 문체부에서 결정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미술관’ 안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 7월26일 문체부는 청와대 미술관 방안을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이 있다는 언론 보도에 해명 자료를 냈다. 내용은 “대통령께 보고한 청와대의 복합문화예술공간화 방안은 ‘문체부가 주도하면서 문화재청,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과 협의하여 추진’하기로 이미 정리된 바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던 청와대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토론회는 7월 말에 무기한 연기됐다.

문체부의 청와대 미술관 추진 계획에 문화재와 역사 분야에선 반발이 나왔다. 7월21일 문체부가 청와대 미술관 방안을 발표하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7월25일 전영우 위원장 주재로 분과위원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 뒤 전 위원장은 “청와대 구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할 수 있는 문화재 지정 방안을 분과위원회별로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필요시 합동 분과를 구성해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일대가 사적 등 문화재로 지정되면 청와대의 활용이나 현상 변경이 제한된다. 이재운 문화재위원회 사적 분과위원장(전 전주대 교수)은 “청와대는 고려 때부터 현대까지 역사가 누적된 공간이다. 전문가들의 학술적 조사나 연구가 충분히 이뤄진 뒤 활용 방안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대는 고종 때 경복궁을 재건한 뒤 후원으로 조성됐다. 일제 초기 융문당(왼쪽 기와 건물)과 융무당(융문당 오른쪽 위) 등 경무대의 모습. 현재의 청와대 비서동과 녹지원 일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청와대 일대는 고종 때 경복궁을 재건한 뒤 후원으로 조성됐다. 일제 초기 융문당(왼쪽 기와 건물)과 융무당(융문당 오른쪽 위) 등 경무대의 모습. 현재의 청와대 비서동과 녹지원 일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역사성·민주성 짓밟는 퇴행

7월25일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문화재청지부도 논평을 내어 “청와대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켜 ‘베르사유 궁전처럼 꾸민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청와대의 역사성과 개방의 민주성을 도외시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은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청와대 일대는 역사 문화재의 보고와 같은 곳이다. 문화재청이 이병훈 의원실에 제출한 ‘청와대 및 주변 문화재 현황’을 보면, 지정문화재는 3건이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오운정, 침류각(이하 서울시 유형문화재) 등이다.

그러나 지정문화재 외에도 이곳의 역사 유적은 셀 수 없다. 먼저 고종 때 재건된 경복궁 후원 건물·시설 터가 다수 포함됐다. 융문당, 융무당, 경무대, 수궁, 경농재, 오운각, 옥련정, 공신회맹단, 춘생문, 춘화문, 추성문, 현무문, 경복궁 후원 담장, 팔도배미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사 유적은 청와대 관련 건물들이다. 본관과 관저, 영빈관, 춘추관, 상춘재, 비서동 등은 해방 이후 건물들이지만,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청와대 공간 전체가 왕정과 식민지정, 독재정을 거쳐 민주정으로 변화를 담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미술관 추진에 전문가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는 절차적 민주성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는 “많은 시민이 와서 직접 보고 있으니 그들의 의견을 모으면 좋겠다. 국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서 어떤 공간으로 바꿔나갈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미술관이든 무엇이든 당장 무엇을 만든다고 결정해선 안 된다. 적절한 과정을 밟아서 공론화하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역사적 공간에 대한 기본 조사다. 오래되고 중요한 역사 공간이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표·시굴·발굴 조사다. 애초 문화재청은 2023~2026년 발굴과 복원 사업을 계획한 바 있다. 이렇게 조사한다면 윤석열 정부에서 미술관을 조성하기는 어렵다.

이강근 서울시립대 교수(건축, 전 문화재 위원)는 “청와대의 건물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터의 역사는 오래됐다. 사적으로 지정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역사학)도 “청와대 터는 고려 때 남경 행궁이 있던 곳이라고 역사서에 적혀 있다.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려시대 유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곳이다”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공간 중심에 두고 활용 방안 찾아야”

셋째는 1869년 고종의 경무대 시절부터 현재의 청와대까지 최고 권력자의 공간이었던 청와대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종의 경무대는 1939년 일제 총독 관저, 1945년 미군 군정청 사령관 관저, 1948년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집무실·관저로 이어졌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 전 문화재 위원)는 “조선 말기 청와대 터는 경복궁 후원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고종이 근대국가를 만들기 위해 인재를 뽑고 신하들과 토론하고 군대를 사열한 장소였다. ‘융문당’과 ‘융무당’이란 건물 이름에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 <청와대와 주변 역사·문화 유산>의 집필 책임자였던 이성우 전 청와대 경호실 안전본부장(청와대연구소장)은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공간, 최고 지도자의 공간이었다. 그 특성을 중심에 두고 활용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기존 시설을 쉽게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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