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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 ‘평화 밀당’에 부동산 죽비까지…문재인 정부 5년 뒷이야기

등록 2022-04-14 21:36수정 2022-04-14 21:53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 입장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 입장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능라도) 연설 형식도 처음에는 경기장에 온 평양 시민들 앞에서 간단히 인사 말씀만 하시라는 것이 북한의 취지였는데, 저희가 생방송도 태우고 정식으로 하자고 역제안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북한이 약간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9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군사 합의 문서가 30장이 넘는데, 새벽 2시쯤에 북측이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요. 그래서 우린 ‘끝까지 밀어붙이고 안 되면 철수하자’라고 한 적까지 있어요. 그런데 북측이 무슨 전갈을 받았는지, 상호 간의 쟁점 대부분을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북측의 결단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최종건 전 청와대 평화군비통제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능라도 5·1 경기장 연설, 총을 맞대고 있던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수 등 긴박했지만 짧았던 한반도 냉전의 ‘봄’. 그 뒷 이야기 등을 담은 책이 나왔다. 대통령 비서실이 청와대에서 일했던 전현직 관계자 13명 등 모두 41명의 인터뷰를 담은 <위대한 국민의 나라>다.

남북 간 평화 ‘밀당’

이 책에서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능라도 연설을 만든 협상 전후 과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윤 의원은 “사실 그 일정 자체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면서 “연설은 북한이 자랑하는 ‘빛나는 조국’ 이라는 집체극 관람 전에 진행하는 연설이었다. 북한이 체제 선전의 장으로 만드는 공연이고, 국내적으로는 민감할 수 있는 대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대통령께서 담대하게 나가자고 하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가 훨씬 더 우월하고, 자신감이 있는데 수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냐’는 취지”로 문 대통령이 말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그렇게 협상에 나서니 북한 쪽에서 먼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 수정하겠다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일정이 확정될 수 있었다”고 했다.

최종건 전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외교부 차관)은 9·19 군사합의 협상의 ‘밀당’ 과정을 전했다. 최 차관은 “북이 했던 말 중 하나가 ‘내가 이대로 평양에 돌아가면 항복분자가 됩니다’ 였다. 그만큼 북도 내부 합의를 도출하는데 애를 쓴 것 같다”면서 “북도 최고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그 의지를 군 내부 협의를 통해 숫자로 구현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고 돌아봤다.

“부동산, 죽비를 맞았다”

‘위대한 국민의 나라’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자성도 실었다. “죽비를 맞았다”면서 “정책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고, “대통령은 국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수차례 국민께 사과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매수 열풍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청년 세대는 급등하는 시장을 보며 영끌 매수에 나서거나 좌절을 거듭해야 했다”며 “뼈아픈 죽비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정리해, 절박한 민생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송구함을 하릴없이 기록하고자 한다”며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문 대통령 임기 중 추진했던 민간등록 임대사업자 제도에 대해선 조세 부담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인식돼 매물 잠김·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정책의 일관성 부족, 국민 신뢰 훼손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고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가 손보겠다고 한 ‘임대차 3법’에 대해선 “임차인 주거 안정을 위해 과감하게 제도 도입을 추진하였다”면서 “제도 도입 초기에는 일부 혼선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제도 시행 초기인만큼 지속해서 보완의 필요성도 검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옹호했다.

특히 청와대는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잃은게 뼈아팠다고 했다. 변 전 장관은 “주택 정책의 신뢰 회복이 중요했는데 결국은 저나 국토부, 그리고 제가 기관장을 맡았던 기관(LH)으로 인해 국민적 신뢰가 오히려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2·4 대책 발표 초기의 가격 추세로 보면 진작 효과가 나서 주택시장이 안정될 수 있었는데 엘에이치(LH) 사태나 보궐선거 결과로 한 9개월을 시장이 혼란을 겪었던 것”이라며 정책 신뢰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었다.

변 전 장관은 또 “주택 공급량이 많더라도 많은 사람은 신도시 보다는 기성 시가지에서 공급되기를 바라고, 또 공급되더라도 그게 나한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받을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데 이런 부분에서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했다.

위대한 국민의 나라 표지. 한스미디어 제공
위대한 국민의 나라 표지. 한스미디어 제공

“현장을 못 보면 뉴스라도 보세요“

이밖에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란 때 문 대통령의 답답했던 심경도 책에 담겼다. 문 대통령은 비공개 회의에서 “정말 속이 터지고 열불이 나는 거지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마스크 하나 해결 못 하고, 근거가 어떠니 계속 그러고 있습니까?”라며 질타했다. 그러면서 “뉴스를 안 보시던데 현장을 못 보면 뉴스라도 보세요”라고 민심을 읽으라고 참모들에게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질책에 노영민 비서실장은 김상조 정책실장 등을 불러 하루 2000만장의 마스크를 공급하는 ‘홍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청와대는 “출애굽 급 기적이 필요했던 절박함”에 이같이 이름 짓고, 마스크와 전면전에 달려들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국외 순방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책에서 “(대통령이 기업인을) ‘끌고 다닌다’는 표현은 말이 안되는게 지금은 대통령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며 “이제는 대기업 회장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제가 이전 정부에서도 대통령과 순방을 많이 다녀봤는데 관광 한번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바쁜 사람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게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순방을 동행한 경험에 대해 “이전 정부와 다른 변화라면 조금 더 권위를 내려놨다”며 “예전에 대통령께서 지나가면 다 얼었다. 요즘은 그냥 편하게 사진도 찍고 자유스러워 졌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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