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선자와 의제 조율 없이 빨리 만나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갑작스런 회동 취소로 정권 이양기에 신·구 권력 사이에 냉기류가 조성되자 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18일 “윤석열 당선인과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대통령의 지시가 실무 협의와 상관없이 만나자는 것이냐. 실무 협의를 빨리하라는 취지인가’라는 질문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양쪽 다 해당될 것 같다.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비서실장이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행 총재 인선 등 공공기관장 인사협의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당선자 쪽의 의견이 충돌해 회동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감정싸움’은 중단하고 대화하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동 무산으로)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마음이다.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니 조건 걸지 말고 만나자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박경미 대변인은 전했다. 유영민 비서실장도 전날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정책,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하여 에스엔에스(SNS) 또는 언론에 개인적인 의견을 올리거나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정권 인수를 준비 중인 윤 당선자 쪽을 자극해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지 말자는 취지다. 전날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이 ‘탈 청와대’를 강조하며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까지 이동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주장하자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페이스북에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으로 옮긴 지 5년이 되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직접 조금 전에 시간을 확인했는데, 그 소요시간은 뛰어가면 30초 걸어가면 57초로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헉헉”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근데 여기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청와대) 안되나 묻고 싶다”고도 했다. 윤 당선자 쪽의 잘못된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윤 당선자 쪽을 조롱하는 글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의 이런 대응이 윤 당선자를 자극해 원활한 정권 이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며 내부 단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탁 비서관이 올린 글 때문에 이런 지시가 나온 것이냐’는 물음에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조건 없는 신속한 대화’ 제안에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청와대 만남과 관련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국민들 보시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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