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단독으로 처음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26일 청와대로 초청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팀’을 강조했다. 지난 10일 여당 대선 후보가 확정된 뒤 16일 만이다.
문 대통령과 이 후보는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고, 이 후보는 회동 내내 문 대통령을 깍듯이 예우했다. 상춘재에 먼저 도착한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이 녹지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어른이 오시는데 내려가야 한다”고 웃으며 계단을 내려가 맞이했다. 문 대통령은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저하고 당내 경선에서 함께 경쟁했고, 경쟁을 마친 뒤에도 다시 함께 힘을 모아서 정권 교체를 해냈다”며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경기지사로서 함께 국정을 끌어왔는데 이제 나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됐다”며 웃었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고, “저도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했지만 앞으로도 우리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역사적인 정부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자리에 앉은 문 대통령은 먼저 “경쟁 때문에 생긴 상처를 서로 아우르고,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일요일날 이낙연 전 대표님과의 회동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이 후보는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청와대 상춘재에 입장하기 전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날 비공개 회동의 주요 화제는 대선 정책경쟁과 기후위기와 경제 문제였다고 하지만, 배석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한 대화에서도 이 후보가 문 대통령과의 동질감을 강조하는 발언이 두드러졌다. 이 후보는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꼭 드리고 싶었다”며 운을 뗀 뒤 “지난 대선 때 제가 모질게 한 부분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했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모질게 경쟁’했던 과거를 문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한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그 심정 아시겠죠”라며 웃으며 받았다고 한다. 이 후보는 이어 전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거론하며 “대통령과 제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 (시정연설) 내용도 꼼꼼히 살펴봤는데 내 생각과 너무 똑같았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데 문 대통령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알고 있다. 거기에 공통분모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계승자임을 강조함으로써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50분간 이어진 회동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 후보에게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등을 당부하며 “이 짐은 현 정부가 지는 것보다는 다음 정부가 지는 짐이 더 클 것 같다”고 말하자 이 후보는 “그 짐을 제가 질 수 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이 후보가 “지난 번 뵈었을 때 비해 얼굴이 좀 좋아지셨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이제는 피로가 누적돼 도저히 회복이 되지 않는다. 현재도 이빨이 하나 빠져있다. 국가기밀”이라고 농담 섞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일종의 극한직업이라 체력 안배도 잘 해야하고 일 욕심 내면 한도 끝도 없더라”며 건강 관리를 잘 하라는 덕담도 건넸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만남에선 “대장동의 ‘대’자도 안나왔다”며 “이재명 후보 쪽과 선거 관련된 이야기,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이야기는 일체 안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야권 후보 간 회동 가능성에 대해선 “야권 후보가 선출 되고 그 후보가 (대통령 면담) 요청을 하면 검토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완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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