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올림픽 개막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방문 여부를 두고 한-일간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언론 등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한일 정상회담과 그 성과가 예견된다면 방일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에 참석하는 정도로만 일본에 갈 수 없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양국간 합의가 나와야 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이같은 언급은 그동안 “일본과의 대화는 항상 열어놓고 있다”는 입장에서 나아가 좀더 구체화된 요구가 나온 것이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도쿄올림픽 개막식의 문재인 대통령 참석 여부와 관련해 “평화올림픽에 저희가 가는 것은 검토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면서 “기왕에 가는데 한일간 정상회담이 열렸으면 좋겠고, 거기에서 현안으로 된 갈등들이 풀리는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저희 뿐만 아니라 일본도,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도 우리 입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제 정상회담 하자, 이런 의제로 한번 해보자 답을 주는게 맞지 않을까”라고 했다.
역사 문제와 수출 규제 등 꼬인 한일관계 실타래를 풀기 위해 정상간 회담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한국 쪽의 일관된 의사에 일본이 답할 차례라는 설명이다. 개막식까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 공개적으로 일본 쪽에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총리 직에 오른 뒤 지난해 9월 20분 동안 전화로 통화를 했을 뿐, 대면 정상회담을 하지는 못했다.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때 약식으로라도 만나려 했지만 스가 총리가 자리를 피하며 무산된 바 있다.
한편 이날 일본의 한 언론은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할 경우, 스가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정부 고위 관리가 “서로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총리가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찌 됐든 좋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이 고위 관리가 “일본 정부가 (정상) 회담 거부를 고집하지 않을 자세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코로나 여파 속에 현재까지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 의사를 밝힌 정상이 2024년 파리올림픽 개최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1명에 그치는 등 개막식 ‘흥행’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다만 청와대는 일본이 애매한 태도에서 벗어나 확실한 입장을 정해야만 문 대통령의 방일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했다. <산케이신문>은 전날 한국 정부가 문 대통령의 방일 의사를 일본에 전달했으며, 스가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이를 바로 부인한 바 있다.
박수현 수석은 “일본이 좀더 열린 자세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국을 존중하는 품격있는 외교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쪽이 공식적인 외교라인을 통하지 않고, 상대국 반응을 떠보는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그는 ‘일본 정부 관계자가 장난치고 있는 거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우리 국민들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또 ‘일본 정부가 한일정상회담을 열자는 메시지를 전혀 안보내고 있는 거냐’는 질문에 “정확히 그렇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현재 상황을 보면 국민들은 그렇게 이해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완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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