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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달라진 대구…정권교체 위해 ‘젊은 보수’ 밀었다

등록 2021-06-14 04:59수정 2021-06-14 20:37

‘이준석 현상’ 탈바꿈하는 보수 ①
영남의 전략적 투표-대구 르포
30대 당 대표 선출 뉴스에 환호
“박근혜 지키다간 정권 못 찾아”
“요즘 젊은 당원들이 늘고 있다”

“준석이가 됐네, 됐어!”

11일 오전 11시10분 동대구역. 역사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이효기(79)씨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이씨는 신이 난 듯 손에 쥐고 있던 박카스를 옆자리의 친구에게 건넸다. “이준석이가 머리 썩은 정치인들보다 산뜻하니까 지지 안 했나. 썩었는데 싹 갈아엎어야 한다 아이가. 이번엔 정권교체 해야 한데이.”

대구에 60년 넘게 거주한 이씨는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으로 바뀌는 동안 줄곧 보수정당을 지지해왔다. 2012년 대선 때도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 그러나 이씨는 ‘탄핵의 정당성’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탄핵은 정당한기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사사로운 정치 했는데 당연한 거 아이가.” 그는 나경원 전 의원이 전당대회 때 내놓은 공약에도 코웃음 쳤다. “박정희 공항? 그런 거 만든다케도 지지할 사람 읎다. 하이고, 그냥 청년들 일자리나 늘리라케라.” 이준석 신임 대표의 수락 연설을 지켜보던 ‘대구 토박이’ 김아무개(42)씨도 말을 보탰다. “이젠 구태로는 국민 마음 못 산다. 이준석이가 변화의 시작이지예.”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당선된 지난 11일 동대구역에서 대구 시민들이 전당대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배지현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당선된 지난 11일 동대구역에서 대구 시민들이 전당대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배지현 기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검증 안 된 ‘0선’ 30대 정치인이라도 보수의 간판으로 내세우겠다는 절박감이다. ‘박정희’도 넘고, ‘박근혜’도 건너야 보수의 새로운 중심을 세울 수 있다는 학습효과다. 이준석 후보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요인은 ‘젊고 새로운 얼굴’을 바라는 민심이 당심을 견인하는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대표가 당원투표에서 37.4%를 받아 나경원 전 의원(40.83%)에게 밀렸지만, 이는 선거운동 초반 예상했던 10~20%에 비하면 2배에 이르는 수치다. 2년 전 ‘당원투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의 같은 ‘룰’이 적용된 자유한국당 대표 선출 당시 오세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앞섰으나 당원투표에서 22.9%밖에 얻지 못해 55.3%를 기록한 황교안 후보에게 패했다. 하지만 이번엔 당심도 민심을 따라갔다. 당원 선거인단 중 50%가 넘는 영남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영남의 전략투표’라는 열쇳말로 설명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호남이 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며 바람을 일으켰듯, 영남도 이전과 결이 다른 ‘합리·중도·수도권·0선·30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구에서 5선을 한 주호영 의원이 당원투표에서 16.82%밖에 얻지 못한 것은 영남이 변했다는 뜻”이라며 “정서적 일체감을 통한 ‘콘크리트 지지’가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맞춰 기대감을 투영한 전략투표를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나경원, 주호영 두 후보 누구에게도 흔쾌히 마음을 주기가 힘든 상황에서 바람이 부는 쪽에 표를 준 것”이라며 “국민의힘 당원이건 지지자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데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남의 ‘전략적 투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날 대구를 돌아보며 느낀 것은 도시 전역을 채운 뜨거운 관심과 열기였다. 이는 대구를 찾은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단골 민심 순례지’ 서문시장에서 확연히 감지됐다. 이날 오후 시장에 들어서자 곧 상인들의 대화에서 ‘이준석’ ‘나경원’ 이름이 튀어나왔다. 서문시장에서 10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는 이아무개(34)씨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내는 이전에 자유한국당에 너무 진절머리가 나서 민주당을 지지했어예. 그런데 민주당도 너무 마음에 안 드는데 이준석이 마치 혜성처럼 나타났지예. 그 사람은 자기가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데요. 약속 잘 지키지 않겠습니꺼.” 휴대폰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사를 읽던 약재상 김아무개(55)씨도 말했다. “내가 국민의힘 지지하는 건 아닌데 민주당 정권을 바꿔야 하니 제1야당에 기대 걸 수밖에 없는 기다. 이준석이는 이명박, 박근혜랑 엮이지 않아서 참 좋다.” 국민의힘의 대구 중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정조(53)씨도 반색했다. “요즘 젊은 당원들이 늘고 있어예. 강성 보수 아닌 이준석이 등장해 젊은이들을 모으고 있거든요.”

지난달 24일 전당대회 기간 동안 대구를 찾은 이준석 당시 당 대표 후보가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전당대회 기간 동안 대구를 찾은 이준석 당시 당 대표 후보가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원외 0선’에 마음을 준 배경엔 대구를 계속 ‘박정희·박근혜의 도시’로 몰아가는 데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깔려 있었다. 국민의힘 당원인 김아무개(35)씨는 “한 어르신이 길거리 지나가다가 박근혜 사면 서명 받는 사람들을 보고 ‘세상이 망했다는데 망한 기 맞나. 진짜 망했으면 여서 이래 서명 정도 받아가지고 되겠나’며 쓴소리하더라. 밖에서 대구를 극우보수라고 보지만, 실제 대구 사람들의 생각은 온도차가 있다. 그러니 이준석이 대구에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원인 김아무개(31)씨는 “대구는 이제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표현했다. “대구·경북은 수십년 수권 정당의 본거지였다는 자부심이 크지예. 박근혜 지키다간 절대 정권 찾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예. 그 탄핵의 강을 건너는 과정에 이준석이를 딱 만난 거 아입니까.”

대구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준석 개인에 대한 전폭적 믿음보다는 이준석 카드를 ‘활용’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촉구하는 서명이 한창인 반월당역 지하상가에서 만난 신아무개(67)씨는 이 대표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박수를 쳤다. “준석이는 준석이대로 젊은 카리스마로 해갖고 정권교체 해낼 것 같다 아이가. 이 나라가 바로 설 것 같제?” 박정조씨는 “야당이 워낙 청년세대 표가 없지 않나. 젊은층과 호흡하면서 표를 가져오려면 ‘이준석이 돼야 한다’는 당심이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고, 당심도 이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당에서 일하는 한 당직자는 “내년에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크지만 다선 의원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기대할 게 없다. 이 대표는 당 인지도를 이만큼 끌어올리고 국민의힘이 변화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대선 경선에서도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투사하는 것은 그가 문재인 정부의 취약지점인 ‘공정’ 문제를 다루는 데 적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반월당역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아무개(31)씨는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비리를 보며 결국 차별이 되물림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만이 많았다. 이 대표가 얘기하는 경쟁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면 좋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명준(23)씨는 “민주당이 많은 실수를 하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이 대표를 향한 시너지 효과로 작용한 것이다. 능력 되는 사람이 뭔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대표를 뽑은 청년 당원 박아무개(28)씨는 “당에 만연한 계파 정치를 청산하면 내년 정권교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본다”며 “지역구에 의존하는 선거는 ‘공정과 경쟁’을 중시하는 엠제트(MZ)세대에게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아니었다. 보수 야당의 젊은 당대표라는 카드는 신선한 충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아직은 변화의 시작”이라며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보수 정당이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에선 호남의 전략투표와 공통점이 있다. 2030세대에 전략적 우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선거 결과에 반영돼 있다”면서도 “호남이 노무현을 선택할 때는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라는 것이 확연했지만 이준석은 이미 보수 정당에 들어온 지 10년이 됐다. 또 부모가 대구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키웠다’라는 잠재의식도 대구 사람들에겐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분명히 영남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당원투표에서 2위를 한 것을 보면, 체질 전환이 이뤄졌다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 바람이 더 확산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순항할지는 일단 ‘이준석호’의 순항 여부에 달려 있을 터이다. 이준석의 등장을 반색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깔려 있었다. “아직 거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중진들과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등의 반응이었다. 당협위원회 간부인 박아무개씨는 “국민의힘이 젊어져서 좋긴 하지만, 경험 적은 분이 국회의원 한번 못한 분이 대선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 우려스러운 점도 많다”고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당대표가 독선적이지 않으면서도 중심 잡고 역할을 잘해줘야 합니다.”

대구/배지현 김규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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