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유승민의 희망 22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나는 이재명 경기지사나 허경영씨와는 많이 다른 정책을 낼 것이다. 돈을 뿌려서 늘어나는 소비로 국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세상에 성장 못 할 나라는 없다. 성장의 해법은 그보다는 훨씬 어렵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유승민 전 의원은 여권의 1위 대선주자인 이 지사를 두고 민주당과 허경영씨가 이끄는 국가혁명당 중간지점에 있는 ‘악성 포퓰리스트’라고 혹평했다.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기본시리즈’를 브랜드 삼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이 지사와 끝장토론을 하고 싶다는 공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사무실을 열고 두번째 대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대선 도전”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돈 뿌려 성장 못할 나라 없어…이재명 정책은 ‘악성 포퓰리즘’”
–내년 대선을 관통할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정한 성장이다. 저성장, 저출산, 양극화라는 삼중고가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삼중고가 더 심해질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시대적 삼중고 해결을 위해 전략과 비전, 정책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분배와 성장 가운데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장을 포기하면 안 된다. 마이클 샌델 책을 보면 ‘조건의 평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서 도전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 즉 공정하게,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조건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게 국민이 차기 정부 5년에 바라는 것이 아닐까.”
유 전 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저서 <나누면서 커간다>를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인 1996년에 펴낸 이 책의 내용은 문민정부 시절 재벌정책에 대한 평가지만 ‘나누면서 커간다’는 장에는 ‘공정한 성장’ 개념이 담겨있다는 게 유 전 의원의 설명이다.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허경영씨의 국가혁명당 중간쯤에 서 있다고 했는데.
“이번 대선 도전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하면서 ‘달콤한 포퓰리즘’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지사, 허경영씨와 많이 다른 정책을 낼 것이다. 이 지사는 일자리 문제나 성장의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데 돈을 뿌려서 파생되는 소비를 가지고 국가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 성장 못 할 나라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성장의 해법은 그보다는 훨씬 힘들다. 이 지사의 경제정책은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의 시즌 2가 될 것이다. 허경영씨 정책과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본소득·기본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국민한테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 그대로 ‘악성 포퓰리즘’이다. 재원이 부족해서 공약을 지킬 수 없거나, 재원이 충분하더라도 서민들에게 불공정한,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 정치적으로 그분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기본소득을 갖고 그분과 끝장토론을 해봐도 좋겠다.”
―연일 이 지사와 각을 세우면서 며칠 전 페이스북에는 ‘악성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청년들에게서 새 희망을 본다’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 지도부와 만난 청년들이 ‘돈 주는 공약에 속아서 표를 주지 않는다’고 했더라.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내놓은 ‘청년층 퍼주기’ 공약이 안 통했고, 정부 여당의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통과 카드도 먹히지 않았다. 퍼주기 예산이 이재명 지사 호주머니가 아닌, 결국 자기들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시대의 낡은 보수, 문재인 시대의 낡은 진보에 각각 속아도 보고 환상도 가져보는 경험을 해왔던 국민께서 이젠 정말 정확하게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다. 그걸 믿기 때문에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과거보다 미래, 앞으로의 5년을 걱정하는 마음이 국민한테 생기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2030 지지층 ‘유리 그릇’ 같아…그들 아픔 공감했는지 돌아봐야”
―실제로 2030 연령층의 보수 진영 지지율이 상승세다. 지지층이 넓어졌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인 상황인데.
“보수 정당 역사상 처음이다. 당황스럽고 두렵다. 연세 많으신 영남권 지지층을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렀는데 서울 수도권의 2030 지지층은 그 반대인 ‘살얼음판’ 같은, ‘유리 그릇’ 같은 지지층이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했는지, 2030세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배려했는지, 그런 정책을 내놨는지 돌아봐야 한다. 여당 때 그렇게 못하지 않았나. 가치관과 문제해결 능력, 유능함이 뒷받침돼야 한다. 변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 가능성은 적아진다.”
―야권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윤석열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수사를 진두지휘했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반면 유승민 지지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각자의 시대를 살면서 역할을 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때 윤 전 총장에게 맡겨진 시대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고 저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의원, 안철수 대표도 그렇다. 이제 경쟁하는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이 과거에 했던 일, 제가 과거에 했던 일들이 드러나고 걸러지기도 할 것이다. 보수 진영 후보들을 모두 끌어안아 경쟁하다 보면 약한 부분, 강한 부분, 중도 확장성, 경쟁력이 있는 부분들이 드러난 것이다. 일부 극우 후보들로 인한 부담도 모두 걸러질 것이라고 본다. 윤 전 총장도 하루속히 뛰어들어서 경쟁했으면 한다.”
유승민 전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유승민의 희망 22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지율 순위가 바뀔 수 있다고 보는가.
“아직 제대로 된 경쟁이 시작되지 않았다. 검증도 해야 한다. 9개월 넘게 남았다. 지지율 순위는 충분히 바뀌는 계기가 올 수 있다고 본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리면서 호소할 뿐이다. 경제와 안보, 두 가지다. 경제는 평생 했고, 국방위원회에서 8년 있으면서 국방위원장을 지냈다. 안보에 애정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
“4년 전 첫 방미에서 장진호 전투기념비를 찾아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자유의 땅으로 건너온 부모님의 사연을 얘기했던 그때 심정으로 돌아가서 한미동맹 신뢰부터 회복하기 바란다. 북핵 문제, 백신 확보, 반도체, 쿼드 등 동맹 의제에 대한 해법은 상호 신뢰 위에서만 찾아낼 수 있다.”
―지난해 미래통합당과 합당하면서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조건을 내놨다. 현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그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는가.
“탄핵의 강을 건너고 개혁보수로 나아가자는 조건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지난 21대 총선에서 무참히 졌다. 우리는 여전히 탄핵에 머물러있는 정당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오셔서 광주 묘역을 찾아 사죄했고,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해 당 대표 자격으로 사과도 했다. 객관적으로 총선 이전,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던 상황에서 현재는 벗어났다고 본다. 탄핵의 강을 건너고 있는 상황이다.”
―보궐선거 이후에도 중진 의원이 탄핵 불복 의견을 내놨다.
“그런 의견이 당 내부에서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탄핵 문제는 사법적인 판단이 끝났기 때문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정권 창출을 위해 발목 잡힐 수 없다는 뜻이다. 오랜 고민 끝에 소신을 가지고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후회가 없다. 다만 상처이고 아픔이 된 ‘탄핵’이라는 부분을 건드려서 국민의힘이 과거로 회귀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일은 이제 중단됐으면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일관된 입장이다. 법률적으로는 평등하게, 형량을 다 채워야 한다는 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망감이 큰 분들의 법감정이라는 것을 안다. 한편으론 국가원수였던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것에 대해 사면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문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다.”
유승민 전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유승민의 희망 22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웅·이준석 선전 고무적…민주당보다 더 변화 가능성”
―다음 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정부 4년을 겪으며 누구보다 공격을 많이 받았다. 엠비(MB)를 공격했다고 친이계로부터, 박근혜 정부 때 잘하라는 쓴소리를 했다고 친박계로부터 미움을 받으며 고생 많이 했지 않나. 계파로 인해 피해를 제일 많이 받고 2016년 공천 때는 나와 친하다는 의원들이 대거 공천 학살을 당했다. 가까운 의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보라는 것은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김웅 의원,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번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나섰다. 의미 있는 지지율도 나오고 있다. 당 변화 조짐으로 해석해도 될까.
“큰 뜻을 같이하기 때문에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고 봐주시면 된다. 당이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는다. 자꾸 시도하고 변화하려는 김 의원, 이 전 위원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나섰던 이들보다 훨씬 더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나.”
―그간의 ‘소신 행보’가 오히려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소신을 밝혀온 것이다. 개혁보수로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흐물흐물하거나 타협적으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유 전 의원은 인터뷰 전날인 지난 17일 5·18 민주화운동 41주기를 맞아 광주 5·18 민주묘역에 참배했다. ‘김종인 체제’에서 ‘호남 동행’ 정책을 앞세운 국민의힘은 올해 5월 광주에서 모처럼 환대받았다. 유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쇼를 하듯 다가가선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거가 없더라도, 진심을 갖고 호남분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가 바뀌면 호남분들도 충분히 마음을 열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대구로 옮겨갔다. 유 전 의원에게 대구는 고향이자 내리 4선을 한 지역구이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배신’의 낙인이 여전히 남아있는 가시밭이다. 대선 도전을 위해선 반드시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와 광주를 함께 떠올리며 내놓은 비유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대구에 가선 낡은 보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과 개혁성, 유능함을 회복하는 보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에 광주에 가선 개혁보수로 바뀔 테니 제발 마음을 열어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선거 때마다 진보의 심장,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광주와 대구, 두 도시의 정치가 변하면 대한민국 정치가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