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홍준표 의원(무소속), 김웅 의원(국민의힘)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한달 앞두고 당권 경쟁을 둘러싼 초선 등 소장파 인사들과 중진 간의 세대 갈등이 확연해지고 있다. 홍준표 의원 복당과 ‘도로 영남당’ 논란이 이들을 가르는 주전선이다. 논쟁을 통해 ‘꼰대 보수 정당’ 이미지가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쇄신의 알맹이가 빠진 권력투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장”vs“팔공산만 5번 등반” 산으로 간 국민의힘 세대갈등
전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나와 이번 전당대회에 대해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원정하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안 되고,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중간산들도 다녀보고 원정대장을 맡아야 하지 그냥 포부만 가지고 하겠다는 것은 저는 국민들이 잘 판단하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임장관·원내대표 등을 지낸 자신의 정치적 경륜을 앞세워 초선 및 소장파 당 대표 후보들을 견제한 것이다.
주 전 원내대표의 ‘동네 뒷산’ 공격에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산’으로 되받아쳤다. 이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주호영 선배께서는 팔공산만 다섯번 오르시면서 왜 더 험한 곳을, 더 어려운 곳을 지향하지 못하셨습니까”라며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수락산과 북한산, 관악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산에 도전하는 후배들 마음을 이해 못 한다”고 썼다. 자신은 민주당 세가 강한 서울 노원구에서 출마해 계속 고전한 반면, 주 전 원내대표는 보수 지지층이 두터운 대구를 지역구로 5선을 이어간 사실을 비꼰 것이다.
검찰 출신 신·구 정치인의 ‘계급장’ 뗀 싸움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탈당한 홍준표 의원(무소속)과 김웅 의원의 공방도 거칠다. 자신의 복당을 요구하는 홍 의원이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나오는 ‘복당 불가’ 주장에 대해 훈계를 하면 김 의원이 반박하는 방식이다. 지난 7일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온실 속에서 때가 아닌데도 억지로 핀 꽃은 밖으로 나오면 바로 시든다”며 “좀 더 공부하고 내공을 쌓고 자기의 실력으로 포지티브하게 정치를 해야 나라의 재목으로 클 수 있다”면서 김 의원을 저격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저는 매화처럼 살겠다. 의원님은 시들지 않는 조화로 사시라”고 반격했다.
‘꼰대 정당’ 벗어날까…‘말꼬리 싸움’ 한계도
주호영-이준석, 홍준표-김웅의 공방처럼 ‘계급장 뗀 설전’은 그동안 경직된 보수 정당에선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초선 발 쇄신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쏙 들어간 민주당과 달리 논쟁이 이어지는 것은 당이 그만큼 민주적으로 설전을 벌이고 있다는 긍정적 변화”라며 “이런 모습은 역동적이고 젊은 당으로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과거에 소장파 의원의 목소리가 조용히 묵살됐던 것과는 달리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재보선 이후 초선들이 당 쇄신 의지를 밝히는 ‘성명서 선공’이 있었다”며 “목소리를 내도 얻어터지지 않는다는 경험치를 통해 자신감을 얻으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권의 한 중진 의원도 “초선과 중진이 당의 변화를 놓고 맞붙는 논쟁은 건강한 설전으로, 앞으로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2000년대 초반 보수 정당 내 개혁 소장파로 불렸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전 의원) 3인방’처럼 당의 외연을 넓히는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원정’은 16대 국회에서 ‘미래연대’라는 모임을 이끌며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제왕적 리더십’에 맞서 소신 있는 언행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과거에는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분명한 소신이 명분이었다면, 지금은 의원 개인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즉각적으로 방어하는 방식이다. ‘영남당’ ‘복당’을 갖고 서로를 공격하는 말꼬리 싸움이라는 점에서 과거 소장파와는 차이와 한계가 있다”며 “각자의 언론 노출도를 높이고 자극적 언사를 즐기는 방식이 아닌 명분과 내용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논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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