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더불어민주당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원론적인 사과를 되풀이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비판을 받은 소속 의원들을 4·7 재보궐선거 캠프에서 제외하는 등의 구체적인 조처에 대해선 함구했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 피해자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17일 저녁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명의로 사과문을 내놓았다. 신영대 민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그간 피해자께서 겪었을 고통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더 이상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신 대변인은 △당 소속 공직자·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 방안 마련, △성비위 무관용 원칙 대처 등의 원론적 대책을 덧붙였다.
하지만 당내 주요 인사들이 ‘피해호소인’ 표현을 사용해 2차 가해를 주도하고 묵인한 점, 남인순 의원 등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을 유출하며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점 등 핵심 내용은 피해갔다. 피해자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선거 캠프에는 저를 상처 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후보 캠프에 공동선대본부장으로 합류한 남인순·진선미 의원과 캠프 대변인을 맡은 고민정 의원을 가리킨 것이다.
박 후보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뜻을 거듭 밝혔지만, 남인순 의원 등을 캠프에서 배제하는 후속 조처를 사실상 거부했다. 박 후보는 전날 밤 페이스북에 “제가 진심으로 또 사과드리고 용서도 받고 싶다”면서도 “저희 당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제게 해달라.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여권 강성 지지층은 공무원 신분인 피해자가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한 것이 “선거 개입”이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견 뒤 한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원순 시장님 피해 주장자를 서울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꼼수다’의 일원이었던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 고소인이 ‘상처 준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되면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라는 말을 했다. 기자회견의 의도가 무엇인지 대략 감 잡으셨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글에는 피해자에 대한 원색적 욕설이 담긴 댓글이 백여개 달렸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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