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회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2·4 공급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시한부 잔류’를 지시하면서까지 후속 작업 마무리를 채근하고 있지만 악화한 부동산 민심과 야당의 공세에 밀려 국회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적폐 청산과 부동산 시장 안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주택 공급을 간절히 바라는 무주택자들과 청년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정부는 예정된 공급대책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국회도 2·4 공급대책을 뒷받침하는 입법에 속도를 냄으로써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힘을 보태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2·4 공급대책에서 밝힌 공공재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재 국회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진성준 의원 발의),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김교흥),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조오섭) 등이 발의돼 있다. 정부 입법은 절차가 복잡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속한 법안 통과를 위해 여당 의원들이 발의했다. 공공이 직접 재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엘에이치 등이 사업시행자로서 토지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사업지구 지정 과정에서 주민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 등이다. 이 법안들에서 명시한 사업 주체는 모두 ‘엘에이치’다.
그동안 여당은 의석수의 힘으로 목표한 법안은 대부분 계획대로 통과시켜왔지만 엘에이치에 대한 여론이 흉흉한 상황에서 이 법안을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날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YTN 의뢰, 12일 전국 성인 500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를 보면, ‘최근 엘에이치 임직원의 투기 행위로 논란이 되는 광명·시흥을 포함한 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적절하다’는 응답은 57.9%로 집계됐다. ‘부적절하다’는 34.0%였고, ‘잘 모르겠다’는 8.1%였다. 국민 절반 이상이 새도시 철회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무리 청와대가 신속한 법안 처리를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4·7 재보궐선거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서민 주택 공급방안을 중단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예정대로) 공공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야당이 반대하면서 4·7 재보궐선거 전에는 (처리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엔 엘에이치 투기 방지법 심사를 위한 법안소위 일정만 잡혀 있을 뿐, 예정된 국토위 전체회의 일정이 없다. 2·4 대책과 관련한 후속 입법은 아예 상정도 안 돼 있다.
국민의힘은 2·4 대책 후속 법안 처리보다 투기 실체 규명이 먼저라며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 소속인 한 의원은 “3기 신도시가 투기의 온상인 것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실체 규명도 없이 공공 주도 개발 정책을 밀어붙이는 건 명분도 없고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입법을 밀어붙인다면 투기꾼들에게 명분을 더 주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2·4 대책 후속 입법이 국회에 계류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변창흠 장관은 애매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변 장관의 사의를 사실상 수용하면서도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입법의 기초 작업은 끝난 상태다. 결국 대통령이 최종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변 장관은 4·7 재보선 이후 정세균 총리가 물러날 때 함께 교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서영지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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