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확행위원회 '금융비용 절감 상생협약식'에서 장경태(왼쪽), 민병덕(오른쪽)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면 제안으로 정치적으로 좀 실점을 하신 게 아닌가요?”(진행자)
“네, 많이 야단맞았죠. 대통령님의 말씀으로 일단 매듭지어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19일 이 대표는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에 나와 납작 엎드렸다. 사면 제안에 대한 사과였다. 지난 1일 새해 첫 화두로 야심 차게 꺼내 든 메시지를 한달도 안 돼 거둬들인 셈이다.
지난 12~14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이 대표는 전월보다 6%포인트 하락한 10%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14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첫 역전을 허용한 뒤 내리 하락세다. 이 지사(23%)와는 더블스코어 이상 벌어졌다. 특히 ‘사면 제안’ 이후 하락폭이 크다.
“사면 제안으로 지지율이 모래성처럼 사라져버렸다. ‘문재인 계승자’라는 위치가 확고했는데, 그 장점이 사라졌다. ‘이낙연이 문재인을 계승하는 게 확실한가?’라는 게 지지자들의 의심이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다.”(당 관계자)
‘사면 제안’으로 휘청거리던 이 대표는 ‘코로나 양극화 해소’에 올인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 11일 이 대표는 “코로나 양극화 시대다. 고소득층의 소득은 더 늘고 저소득층의 소득은 더 주는 케이(K)자 양극화”라며 정부·여당의 실정을 비꼬는 용어까지 직접 입에 올리며 양극화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익공유’라는 새로운 제안도 내놨다.
이후 어딜 가든지 ‘양극화 해소’ 메시지를 빠트리지 않고 있다. 수출 현황 점검차 인천 신항을 찾았을 때(“코로나 양극화를 극복하려면 일정한 정도의 성장이 필요하고, 성장을 위해 수출의 기여가 불가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도, 4월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공천관리위원회 첫 회의(“코로나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하고 극복하느냐, 후보들이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에서도 모든 메시지를 ‘양극화 해소’에 집중했다. ‘사면 제안은 잊어달라. 나는 문재인 정부를 계승하는, 민주당 정체성에 맞는 후보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열혈 당원들은 아직 이재명 지사보다는 이낙연 대표 편으로 보인다. 지난 6일부터 민주당 누리집 권리당원 게시판에서는 ‘이낙연 대표 퇴진’과 ‘이재명 경기지사 출당’에 대한 찬반 투표가 벌어졌다. 21일 현재 ‘이낙연 퇴진’은 찬성 3466명에 반대 6851명, ‘이재명 출당’은 찬성 6703명에 반대 377명이다. 적어도 당원 게시판 여론은 ‘그래도 이낙연’이라는 뜻이다.
“열혈 당원들은 ‘그래도 이재명은 싫다’는 거다. ‘이낙연 당신을 지지할 명분을 달라’는 거다. 코로나 양극화 대처라는 민주당다운 개혁 과제에 집중하면 지지세는 살아난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이 대표 쪽 인사)
대표 취임 뒤 지난 연말까지의 시간은 정치인 이낙연에게 ‘숙제의 시간’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이자 18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당의 대표로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를 입법화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다만 이것이 ‘숙제’라는 게 문제였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는 프레임이다. 득점은 불가능하고, 실점 위험만 가득하다.
썩 잘하지도 못했다.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은 처리 과정에서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민감한 법안들의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이 대표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숙제 기간’ 이 대표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숙제의 시간’은 끝났고, ‘정치인 이낙연의 시간’은 시작됐다. 다음달 2일 이 대표는 취임 후 두번째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다. 지난해 9월 연설이 ‘당 대표자 이낙연’의 데뷔전이었다면, 이번 연설은 ‘대선후보 이낙연’의 데뷔전이다. 이 대표는 본인이 오랫동안 고심해온 ‘신복지제도’를 중심으로 코로나 양극화 극복을 위한 비전을 설파할 것으로 보인다. ‘사면 건의-이익공유제 제안’과 이어지는 이낙연표 정치 3탄인 셈이다. 연설 한달 뒤 이 대표는 짧은 당대표 임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한달 뒤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곧이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열린다. 본게임이 이제 코앞이다. 이 대표는 반등할 수 있을까? 시간은 많다. 하지만 시간은 늘 빨리 흐른다.
김원철 정치팀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