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한국과 일본 모두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제3차 대유행이 시작되며 양쪽 정부 모두 지지율이 급락했습니다. 지난 9월 중순 60%대의 양호한 성적으로 출범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지지율은 21일 <아사히신문> 조사를 기준으로 39%까지 떨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코로나 3차 대유행에 ‘추-윤 갈등’까지 겹치며 한때 40% 콘크리트 지지율이 깨지기도 했습니다(한국갤럽)
‘의도’ 엿보이는 조선일보 ‘한-일전’ 프레임
그러다 보니 한-일 양국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낼 수 있는 ‘백신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두 나라 사이 해묵은 경쟁심을 자극하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가 한국의 첫 백신 접종 시기에 대해선 “빨라야 (내년) 2~3월”(12월9일치 3면), 일본에 대해선 “이르면 내년 3월”(12월18일 인터넷 기사)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음을 보여주는 캡쳐 화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그러자 김성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은 ‘빨라야’ 3월이고, 일본은 ‘이르면’ 3월이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조국에 원한이 있는 걸까. 이러니 ‘토착왜구’ 표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분노를 터뜨렸고, 21일엔 김태년 원내대표까지 나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우려가 있다.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한-일 모두 백신 접종 예상 시기가 내년 2~3월로 큰 차이가 없는데도, “한국은 늑장을 부린 것이고 일본은 부지런히 서두른 것”(김성주 의원 페이스북)이란 인상을 주는 <조선일보> 보도는 의도적이라는 의심을 살 만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한-일 비교’는 민족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백신 확보에서 한국이 일본에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나온 김에 한-일 양국 정부의 백신 확보 상황을 비교해 볼까요?
<조선일보> 보도를 비난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먼저, 일본 상황입니다. 일본에서 백신 확보와 관련해 큰 진전이 이뤄진 것은 지난 18일이었습니다. 다무라 노리히사 후생노동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일본에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제조판매 승인 신청’(사용신청)을 해왔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다무라 후생상은 “관계부서에 최우선으로 신속하게 심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실히 심사한 뒤 승인이 나면 최대한 빨리 접종이 가능하도록 태세정비를 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2월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 가능
<아사히신문>의 이튿날 관련 보도를 살펴 보면, 일본은 화이자가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거친 4만명의 데이터를 기본 자료로 놓고 여기에 일본 국내의 데이터를 참고해가며 이르면 내년 2월까지는 판매허가를 내줄 방침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물론, 일각이 급한 상황이니 일본 정부는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별승인’을 적용해 최대한 빨리 심사를 마칠 계획입니다.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2월에 치료실험 데이터가 나오면 신속하게 접종을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일본은 이르면 3월”이란 표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분명히 말하자면, ‘일본에선 이르면 2월’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체적인 백신 확보상황은 어떨까요.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 ‘해외에서 개발한 백신의 확보와 관련된 노력’을 보면, 11일 현재 일본이 해외 제약사들과 맺은 계약 내용을 간략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미국 모더나와는 10월29일 “내년 상반기에 4000만회, 내년 3분기까지 1000만회에 달하는 백신 공급” 계약을 마쳤고,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는 12월10일 “내년 초 1억2000만회분의 백신(그 중에 약 3000만회에 대해선 내년 1분기에 공급)을 공급받는다”는 계약을 마무리했습니다. 화이자와는 7월31일 “내년 상반기까지 6000만명 분의 백신을 공급받는다”는 합의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지난 18일 화이자의 제조판매 승인신청은 이 합의에 따른 후속 조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백신 확보상황을 보여주는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 ’해외에서 개발된 백신의 확보에 관한 노력’. https://www.mhlw.go.jp/content/000704696.pdf에서 다운로드 가능
이제, 한국의 상황을 볼까요? 정세균 국무총리는 20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나와 한국의 백신 확보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밝혔습니다. 정 총리는 “화이쟈, 얀센, 모더나 3개사 중 2개사와는 계약서 서명을 하기 직전이고 나머지 1개사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조건에 합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3개사와 계약이 임박했지만 1분기 공급 양속을 받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는) 내년 1분기 공급 시작이 약속되어 있다. 다만 1분기 언제라는 것은 특정이 안 되어 있다. 우리는 2월부터 시작하고 싶지만 (공급시작이) 3월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계약 실적 일본이 앞서는 건 사실이나…
실제 접종 시기는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정확히 감안해 판단할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내년초 사용신청을 해오고, 식약처가 심사기간을 대폭 단축한다면 접종 시기 역시 빨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양국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이미 모더나 등과 계약을 맺은 일본보다는 한국 상황이 뒤쳐져 있는 건 사실이고, 실제 첫 접종 시기는 두 나라 다 3월께이니 일본과 한국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선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들보다 백신 도입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정세균 총리도 전날 “정부가 백신 티에프(TF)를 가동한 지난 7월에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시인했지요. 그러나 코로나19 감염·확산 현황, 방역 상황 등이 각기 다른 처지에서 백신도 ‘한-일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물론 여당의 책임있는 국회의원들이 보수언론의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백신 한-일전’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모습 또한 현명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