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오후 국회를 방문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전달받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정당’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정당’을 내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민생’과 ‘개혁’을 주도해온 더불어민주당은 정책공조의 기대감과 더불어 의제 설정 주도권을 통합당에 내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오른쪽’에 쪼그라들어 있던 통합당이 보수혁신을 이뤄 본격적인 ‘중원경쟁’에 나설 역량을 갖추게 될지, 21대 국회가 한국 정치 수준을 높이는 정책 대결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2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3차 추경도 재원이 어떻게 짜여졌느냐 등을 검토한 뒤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3일엔 취임 인사를 겸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 원구성 협상과 추경안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 특유의 간결한 메시지와 유연한 태도는, 통합당의 총선 참패 원인으로 ‘자기 혁신 없는 보수의 오만’을 꼽은 데서 비롯됐다. 고용·복지·돌봄·교육·불평등 등 정책 이슈에서 보수의 가치를 넘어선 파격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통합당 전국조직위원장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진보, 보수라는 말 쓰지 말라. 중도라고도 하지 말라. 정당은 국민이 가장 민감해하는 불평등과 비민주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정희 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 노태우 정부에서 국민연금,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등 보수 정당이 한국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어왔다”며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보듬기 위해 사회 안전망 강화와 혁신적인 복지모델 구축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일단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복지 이슈는 김 위원장과 민주당의 견해가 겹치기 때문에 관련 논의가 더 신속해질 수 있다”며 “여야가 정쟁 대신 정책 경쟁을 벌인다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민생, 보편적 복지 등 민주당이 독점하다시피 한 주요 의제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앞서 김종인 비대위를 경험한 다수의 여당 의원들은 “김 위원장은 절대 끌려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선제적인 의제 설정으로 이슈를 선점하고 민주당이 그걸 받도록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은 보수 진영에 있을 때는 강렬한 진보적 메시지를 던지는 김 위원장의 특징을 짚으면서 “민주당이 이 페이스에 말려들면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도권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면 오히려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어느 당이 실적을 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원래 경제민주화나 복지 법안은 보수당이 주도할 때 반대 의견 돌파가 더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외’가 다수인 ‘김종인 비대위’가 통합당 내부의 반발 기류를 돌파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잘하나 한번 보자’라는 마음으로 김종인 체제를 지켜보는 의원들이 당내에 상당수”라며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김종인 비대위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강’을 내세웠던 장제원 의원은 이날 김 위원장이 ‘보수’ ‘자유우파’를 더는 강조하지 말라고 한 것과 관련해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견제구를 날렸다. 김 위원장이 이날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다소 불만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너무 시비 걸지 말고 협력해달라”고 한 것도 취약한 당내 기반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통합당과 협치의 모델을 구축하려면, 야당에 명분을 주는 여당의 협상 기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본인이 던진 의제를 반드시 현실화하는 김 위원장의 스타일을 볼 때 통합당의 변화의 폭은 상당히 클 것으로 기대된다”며 “정부가 들고 온 법안을 빨리 처리해주는 게 국회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는 점에서, 협치의 명분을 만들어야 할 여당의 역할이 오히려 커졌다”고 짚었다.
노현웅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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