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 차려진 개원종합지원실에서 받은 금배지를 달고 있다. 김웅 의원실 제공
5월16일. 총선을 치르고 딱 한달이 지난 날이었다. 그날 저녁 김웅 미래통합당 의원(서울 송파갑)은 송파구의 한 식당에서 대학생들을 만났다. 검사 시절 만난 한국외대 토론 동아리 ‘노곳떼’ 회원들이었다. 통합당의 총선 참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학생들 입에서 ‘뼈 때리는’ 말이 와르르 쏟아졌다. “참패? 그 정도면 다행이죠. 더 심하게 질 줄 알았어요.” “국민들 지성을 좀 고려해서 수준 높은 얘기를 하셔야죠.” “극우 보수와 연 끊지 못하면 표 받을 거 기대도 마세요.” 귀 막고 싶을 만큼 모진 말들 사이에서 누군가 애정 담은 발언을 내놨다. “그래도, 당 전체에 비하면 김웅 개인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긴 해요.”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던 김 의원이 반색했다. “기자님, 들었죠? 청년 정당 만들기가 21대 국회에서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1970년생, 올해 쉰살. 103석 통합당에서 그보다 나이 어린 의원은 13명이나 된다. 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이 차가 크게 안 느껴질 만큼 김 의원은 젊어 보인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정장을 입고 다닐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전날 국회 ‘개원종합지원실’에서 배지를 받을 때도 그는 풀색 재킷에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금배지에 김웅이란 자아의 고유성을 구속당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았다.
이런 태도는 검사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을 쓴 그는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검찰 특유의 집단주의에서 ‘반 발짝’ 떨어져 지냈다. 그의 재기발랄함을 눈여겨본 문무일 전 검찰총장에게 발탁돼 2018년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서 수사권 조정 대응 업무를 맡았다. 정부·여당의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한 그는 지난 1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 내부 게시판에 “거대한 사기극에 항의하기 위해 사직한다”는 글을 올린 뒤 검찰을 떠났다.
전남 순천고를 졸업했고 보수색도 옅은 그가 통합당에서 출마하게 된 것은 유승민 전 의원 때문이었다. 지난 2월 당시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던 유 전 의원은 ‘새보수당은 세가 약하지만, 같이해보지 않겠냐’며 ‘솔직한’ 제안을 했다. 며칠간 고민 끝에 두번째 만남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16일 왜 정치권에 들어갔냐고 묻는 학생에게 김 의원은 “물에 휩쓸려 본 적 있나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휩쓸리듯 시작한 정치지만, 누구보다도 금배지 6g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중이다. 선거 때는 피곤에 젖어 단잠 자던 그가 요즘엔 새벽마다 잠을 설친다. 177석의 슈퍼 여당을 상대해야 하는 통합당의 일원이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당내에서 귀한 존재다. 통합당은 서울 49개 지역구 중 송파갑을 포함해 8석밖에 얻지 못했다. 지역구가 서울이고 ‘개혁 보수’ 이미지를 갖춘 그에겐 당의 혁신을 주문하는 기대가 크다. 언론마다 다루는 ‘주목하는 21대 초선’에 빠지는 법이 거의 없었다. 18~29일 열흘 남짓 동안 언론사 6곳과 인터뷰를 했고 토론회·세미나 7곳에 참석했다. 선거 이후 점심과 저녁을 혼자 먹어본 적이 없다. 검사 시절 알던 사회부 기자부터 새로 안면을 튼 정치부 기자들까지 ‘콜’이 쏟아진다. 하루 저녁에 식사 약속을 몇차씩 뛰기도 했다.
분주한 일정에서도 그가 집중하는 것은 당의 ‘내일’이다. 지난 20일 대부분의 초선들은 초선 의원 의정연찬회가 열리는 국회 헌정기념관에 갔지만 그의 발걸음은 ‘통합당 총선 패배 원인과 대책’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 장소로 향했다. “통합당이 참회한 적 있나? 없다. 참회는 짧고 투정은 길었다”, “이제 통합당은 제3의 길을 가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보수우파’라는 말을 쓰지 마라”는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의 일갈에 그의 표정은 다시 심각해졌다.
이틀 뒤인 22일 통합당 당선자 연찬회에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엔 설렘과 기대가, 또 한구석엔 절박감이 담겨 있었다. 초선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나서는 열띤 분위기에 김 의원도 가세했다. 통합당 ‘금칙어’였던 ‘기본소득’이 활발히 논의되는 것을 보고, 김 의원은 “국민들께 제대로 얻어맞다 보니 이제 정신을 차리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당에 기대감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사실 그는 지역구 송파갑과 별 연고가 없다. 보수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곳을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이 첫 인연이었다. 마음의 뿌리를 두기 위해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지역구에서 조그마한 텃밭을 분양받았다. 떨어지든 붙든 송파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텃밭의 첫 수확날인 16일, 선거를 도운 이들과 주민 10여명이 모여 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곁들여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케이크를 자르며 당선 축하 노래도 불렀다. “진흙 같은 국회에서 연꽃으로 피길 바란다. 젊고 품격 있는 의원이 되어달라.” 한 주민의 건배사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