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2회 목요대화에서 등장한 ‘달고나 커피’ 관련 내용. KTV 국민방송 유튜브 갈무리.
“집에 갇혀 있으니 이런 놀이방식이 등장합니다. 혼자서 건배하거나, 국수로 뜨개질도 하죠.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달고나 커피’가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문화 콘텐츠 놀이)처럼 확산했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총리 공관에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이 ‘달고나 커피’ 사진을 화면에 띄우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달고나 커피’란 커피가루와 설탕을 숟가락으로 수백번 저어 고운 거품을 낸 뒤, 우유에 얹어 만드는 커피입니다. 제2회 목요대화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송 부사장은 “데이터 추세를 보면 (한국에서 유행한) 2주 뒤 ‘달고나 커피’가 전 세계적 트렌드로 확산됐다.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고 있는 만큼 코로나19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트렌드를 움직이는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주도로 시작된 ‘목요대화’가 14일로 3회째를 맞습니다. 목요대화는 매주 목요일마다 미래·보건·경제·사회·공공·국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지난 7일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 준비’를 주제로 진행된 목요대화에서 정 총리는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현상들은 개인과 기업 모두 기존의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디지털 경제 전환을 맞이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기반 마련을 위해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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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이어진 스웨덴의 협치실험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전 총리. 온라인 갈무리.
정 총리의 목요대화는 1946년부터 23년간 집권하며 스웨덴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총리로 평가받는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전 총리의 ‘목요 클럽’에서 따온 대화 모델입니다.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 기관’(The organ for cooperation to increase exports and production)이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열려 ‘목요클럽’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엘란데르 총리는 기업가·노동조합·소상공인등 다양한 경제 주체를 직접 총리 별장이 위치한 스톡홀름 서부 하르프순드(Harpsund)에 초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이때문에 스웨덴에서는 엘란데르 총리의 대화 모델을 지칭해 ‘하르프순드 민주주의’로 부르기도 합니다.
엘란데르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목요클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대표하는 인사들은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대 기업이 현재 스웨덴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경청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평가부터, 목요클럽에서 대화를 나눈 특정 기업 관계자를 두고 “그의 지혜와 넓은 시야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지역 정치인을 해도 잘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개인적 평가까지 목요클럽에 대한 폭넓은 감상을 자신의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대화·협치를 중시하는 목요클럽은 스웨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현재까지도 스웨덴 노·사·정의 중요 대화는 목요클럽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 준비’를 주제로 열린 2차 목요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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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가 ‘목요 대화’에 나선 이유
정 총리는 지난 1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스웨덴의 목요클럽을 언급하며 “대화 모델을 살려 각 정당과 각계각층의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 격의 없는 만남과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정부와 의회 간 협치를 이뤄내고, 다양한 사회갈등 해결의 계기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6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지낸 정 총리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라는 점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대표 정책으로 ‘목요 대화’를 내건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보기 위해 정 총리의 저서인 <정치에너지 2.0-국민시대의 정치철학>(2011)을 살펴봤습니다.
“토론과 대화 과정에 참여할수록 시민들은 자기 의견을 형성하고 표출할 기회를 갖고 반대편 의견으로부터 경청할 만한 부분을 수용하게 된다. 이런 교육적 과정을 통해 도달한 합의는 견고하고 오래 간다. … 밀실에서 고안된 정책을 진리라고 믿고 밀어붙인 의사 결정은 민주주의에서 제도로서 제 기능을 하기 힘들다. 동의하는 과정이 없었으므로 거기에 따르게 하려면 억지가 따른다.” p.100
정 총리는 저서에서 “정치인들이 다뤄야할 국정의 많은 현안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결론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며 여러 주체들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정 총리가 초선 의원이던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당시 합동 중재단 일원으로 노사 교섭을 설득했던 일화도 나옵니다. 그는 당시 “경영계는 정치적으로 외압을 넣어서 구조조정을 무력화했다고 비난했고,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정리 해고의 길을 열어줬다고 몰아붙였다”고 회고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영계나 노동계나 정치를 불신하는 것은, 정치의 긍정적인 역할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는 타협과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하는 정치의 역할이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대립하는 이해를 조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정치가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망설이지 않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p.58
지난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 준비’를 주제로 열린 2차 목요대화 모습. 연합뉴스.
14일에 열리는 세 번째 목요대화 역시 ‘포스트 코로나’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교수진·정치인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전문가 그룹이 주로 참여했는데요. 총리공관의 문턱이 좀 더 낮아지면 어떨까 상상해봤습니다. 예를들어 13일부터 정부가 추진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으니, 전국 각 지역의 전통시장 상인들을 총리 공관에 초청해 재난지원금의 효과와 보완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으로 등교개학이 미뤄진 지금, 등교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맞벌이 부부나 교사, 학생들을 초대해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보는건 어떨까요? 정 총리가 주도하는 ‘목요 대화’가 한국 사회의 폭 넓은 공론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