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슈
국회의원 지역구 세습 논란
제헌의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가족 의원’ 70번 탄생
부자 관계가 37번으로 최다
문희상 의장 아들 출마에
“지역구 대물림” 비판
현역 아버지 지역구에
직행하는 사례는 드물어
“유권자 선택” 강조하지만
‘후광효과’로 불공정 경쟁
국회의원 지역구 세습 논란
제헌의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가족 의원’ 70번 탄생
부자 관계가 37번으로 최다
문희상 의장 아들 출마에
“지역구 대물림” 비판
현역 아버지 지역구에
직행하는 사례는 드물어
“유권자 선택” 강조하지만
‘후광효과’로 불공정 경쟁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 들어서면 로비 양쪽 벽면에 ‘국회진기록관’이 있다. 왼쪽 전시물은 최연소·최고령 의원, 가장 긴 발언을 한 의원,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 등 특이한 이력을 소개한 것이다.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시물은 ‘국회의원 가족 당선 기록’이다. 제헌의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부자 국회의원’(부녀·모자·모녀 등도 포함)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모두 47가족이나 된다. 일부는 가족사진도 함께 전시했다. 이와 별도로 ‘부부 국회의원’이 9가족, ‘형제 국회의원’이 14가족 있다. ‘최초’ 사례나 ‘연속 12회 당선’ ‘3형제’ 등 특이한 경우는 다른 색깔로 눈에 띄게 꾸몄다. 가족의 정치적 자산을 공유한 국회의원이 적지 않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물인 셈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보여주는 방식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49)씨가 아버지가 6선을 지낸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것을 두고 세습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력 정치인 아버지의 ‘정치 자산’을 활용해 권력을 쉽게 대물림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에 문씨는 “선출직을 세습이라고 하는 건 공당과 지역주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한다. 입시나 취업 등에 부모의 경제·문화 자본이 공공연하게 영향을 끼치듯 정치에서도 ‘아빠 찬스’는 통하는 것일까? 전·현직 의원들의 사례로 살펴보았다.
부자 국회의원 37번, 부녀 국회의원 5번
국회진기록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정보 등을 살펴보면, 제헌국회 이후 ‘부자 국회의원’은 37번, ‘부녀 국회의원’은 5번의 사례가 있다. ‘모자 국회의원’은 딱 한번(13대 도영심-19대 이재영)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4선 김태호-3선 이혜훈)도 있고, 할아버지나 외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을 지낸 경우도 3명(20대 김현미·이상돈, 19대 유기홍) 있다. 20대 현역 의원 중에는 국회의원 출신 아버지를 둔 경우가 지역구 10명, 비례대표 3명이다.
최근 문 의장 부자의 사례가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현역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지역구를 곧바로 물려받은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4선)이 아버지 지역구에서 ‘직행 출마’한 경우다. 아버지 정석모 전 의원은 박정희 정권 때 강원도·충남도 지사를 지냈고, 10대 총선 충남 공주에서 당선돼 15대까지 내리 6선(비례대표 2번 포함)을 했다. 정 의원은 아버지의 뒤를 곧바로 이어 16대 총선 충남 공주·연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 시절 만들어진 국회진기록관에 ‘연속 9회 당선 가족’으로 소개돼 있다.
이런 ‘세습 공천’이 낙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대 총선 때 이용희 전 의원(5선)은 아들 이재한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고 당적까지 옮겼다. 그의 지역구인 충북 남부 3군(보은·옥천·영동)은 ‘이용희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한 곳이었다. 한나라당이 휩쓴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이곳 3군에서 모두 그의 소속 정당(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유선진당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선진당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켰다. 그러나 아들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하자 자신의 지역구 선진당 소속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이끌고 민주당으로 돌아가 세습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들은 민주당 공천을 받았으나 19대·20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정호준 전 의원(19대)도 아버지 정대철 전 의원(5선)으로부터 서울 중구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첫 출마였던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18대 때는 전략공천에 밀려 공천도 받지 못했다. 서울 중구는 2~9대 8선 국회의원을 지낸 그의 할아버지 정일형 전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유신 반대 활동을 하다 구속돼 의원직을 잃자 아들 정대철 전 의원이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역구가 3대로 이어지면서 세습 논란이 불거진 사례다.
아버지 지역구에서 당선된 경우는 20대 현역 의원 중에도 여럿 있다. 김세연 한국당 의원(3선)은 아버지 김진재 전 의원이 5선을 지낸 부산 금정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김 전 의원은 16대 국회를 마친 뒤 2005년 별세했고 김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정치 신인이었는데도 그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64.76%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과 아버지 노승환 전 의원은 ‘마포 부자’다. 노승환 전 의원은 1971년부터 2002년까지 30여년 동안 서울 마포에서 국회의원 5선에 국회부의장, 민선 1·2기 마포구청장을 지냈다. 노웅래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때 마포갑에서 처음 당선됐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4선)은 15대 총선 때 아버지 정운갑 전 의원(4·7·8·9·10대)의 고향이자 지역구였던 충북 진천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했다. 장제원 의원(재선·부산 사상구)은 아버지 장성만(11·12대) 전 국회부의장의 지역구에서 18대 때 입문했고, 홍문종 우리공화당 의원(4선)도 아버지 홍우준(11·12대)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에서 15대 총선부터 선거를 치러왔다.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4선)의 지역구는 대구 중구에서 재선을 한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과 가까운 대구 동구을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인 김영호 의원은 6선을 지낸 아버지 김상현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서울 서대문갑에서 17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이후 지역구를 서대문을로 옮겨 4수 만에 당선됐다.
이 밖에 ‘부자 의원’으로는 한국당 이종구(3선·서울 강남갑) 의원과 이중재 전 의원(6선), 김무성(6선·부산 중구 영도구) 의원과 김용주(초선) 전 의원이 있다. 비례대표 가운데는 장정숙 대안신당 의원-장영순 전 의원(4선),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김현배 전 의원(초선)이 ‘부녀 의원’이고, 김종석 한국당 의원-김세배 전 의원(3선) 부자도 있다.
문희상 의장 아들이 입는 후광효과
문석균씨는 ‘지역구 대물림’이라는 비판에도 지난 11일 의정부시 신한대학교에서 자신의 책 <그 집 아들> 북콘서트를 열었다. 사실상 총선 출마식인 이 자리에서 문씨는 “아버지의 길을 걷겠지만, ‘아빠 찬스’는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했다. 공천과 당락은 정당과 유권자가 판단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 “누구보다 아버지의 오랜 정치 인생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고 배우며 체득했다”며 서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상공인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씨는 의정부역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 숭문당의 대표다. 숭문당의 창업주(1995년)도 문 의장이다. 문씨는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 59대 중앙회장 경력이 있다. 문 의장도 이 단체의 34대 중앙회장을 지낸 바 있다. 문씨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안병용 의정부시장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그해 12월 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다. 정치 경력으로는 완전 신인인 셈이다.
유력 정치인 아버지의 커다란 ‘후광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문씨의 북콘서트에는 3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3선·경기 양주시)은 축사에서 “저는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분과의 인연으로 정치를 시작했다”며 “제 의정보고회에 오신 분보다 두배 더 꽉 찬 것 같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그 집 아들, 바로 6선 국회의원 문희상 의장님, 그 집 아들이다. 그동안 집안에서 얼마나 제대로 정치의 길을 배웠겠느냐”고 했다. 의정부시 전·현직 시장과 시의회 의장 등도 참석했다.
그가 출마하려는 아버지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갑은 어떤 곳일까. 문 의장은 13대 총선에서 의정부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당시 현역 의원은 홍문종 우리공화당 의원의 아버지인 홍우준 전 의원으로, 그 역시 이 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문 의장은 14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됐으나, 15대 총선에서는 재선에 실패했다. ‘아버지 지역구’에 나선 홍문종 의원에게 패한 것이다. 하지만 문 의장은 16대 총선부터는 내리 다섯번 당선됐다.(의정부는 18대 총선부터 갑구와 을구로 나뉘었다.) 20대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컷오프’ 됐으나 대체할 후보가 없어 다시 전략공천을 받아 당선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지역에서 기반을 다진 당내 경쟁자가 없었고, 현재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 세습 정치의 ‘3반’…조직·간판·돈
이런 상황은 세습 정치가 강고한 일본에서 통용되는 ‘3반’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2017년 중의원 선거 당선자의 26%가 세습 의원이었다. 특히 자민당은 3분의 1이 가족한테 금배지를 물려받았다. ‘3반’은 의원직 세습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프리미엄으로, 조직을 뜻하는 ‘지반’(지역 기반), 가문의 지명도를 의미하는 ‘간반’(간판), 자금력으로 풀이되는 ‘가반’(돈가방)이다. 일본은 정치인 후원회 후원금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고, 투표용지에 후보 이름을 직접 쓰는 기표 방식을 사용하는 등 제도적으로도 현역이나 세습 정치인이 유리하다. 아버지가 사망할 경우 보궐선거에 자녀가 출마하면 거의 무조건 뽑아주는 ‘도무라이 갓센’(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복수전이라는 뜻)이라는 문화도 있다.
한국은 이런 수준의 세습 정치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3반’과 같은 후광효과는 작동한다는 걸 그동안의 사례들이 보여준다. 선거에서는 구도와 당내 상황, 지역구 현안 등 여러 변수가 맞물리기 때문에 후광효과로 당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정치 신인들이 갖지 못하는 정치 자본을 물려받음으로써 유리한 출발선에 선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희상 의장 아들이 경선이라는 절차와 형식을 거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해당 지역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역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7일 문 의장 지역구와 현역 의원 불출마 지역 등 15곳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문씨를 공천에서 배제한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오지만, 당규에 따라 현역 불출마 지역 전체가 전략선거구로 지정된 것으로, 민주당은 앞으로 이들 지역 중 일부를 경선 지역으로 돌릴지 등을 더 논의할 예정이다. 문씨는 지난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정부갑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의장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석균씨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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