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월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후임에 노영민 주 중국대사가 임명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일이라는 게 의도치 않은 데에서부터 ‘나비효과’가 생긴다.”
17일 갑작스레 들려온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21대 총선 불출마 소식에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이 내놓은 의미심장한 평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이 86세대를 넘어 중진 용퇴론까지 번져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 전 실장도 본인이 가져올 이런 파급효과를 예상했을 터다. 공교롭게도 이날 민주당의 수도권 3선인 ㄱ 의원이 불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뉴스도 나왔다.
임 전 실장의 선언은 단순한 인적 쇄신을 넘어 ‘86세대 정치인의 진로’라는, 여권에서는 매우 예민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86세대는 1990년 중반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에 따라 정치권에 진입했고, 2004년 17대 국회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만 44명이 여의도에 입성할 만큼 세력을 형성했다. 그중 임 전 실장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자 86세대 정치인의 핵심축이었다. 임 전 실장의 내려놓기를 계기로 민주당 주류를 형성한 86세대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2030세대에게 기득권으로 비치는 현실에 대해 답을 해야 할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86세대들이 여전히 정치를 주도하고 배려받아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임 전 실장의 불출마로 이들은 총선 출마와 관련해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86세대의 또 다른 핵심인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았다. 이 원내대표는 “지금 진퇴 문제와 결부 지어서 (얘기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며 “여러가지 고민이 있고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에 대한 구상도 있지만,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등) 제 앞에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다른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을 아꼈다.
‘용퇴’하지 않는 중진들을 향한 압박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당장 임 전 실장과 종로 지역구를 두고 다퉜던 국회의장 출신 정세균 의원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국회의장까지 하고도 그 자리를 더 하겠다고 버티는 게 후배 입장에서는 민망하다. 자유한국당에서는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여당은 뭐 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참에 정치 풍토가 잡혔으면 좋겠다. 정말 양보해서 4선까지 한 사람은 5선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진들을 향한 압박은 종로의 정 의원에 그치지 않고 당내 수도권 다선들을 향해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당 안팎에서는 추가로 불출마를 선언하는 초선들이 중진 용퇴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 몇몇 의원은 이해찬 당대표를 따로 만나 중진 용퇴론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현재 당내에서 최소 25명의 의원이 불출마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중진 의원이 용퇴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왜 하필 중진이냐고 하면, 기득권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물갈이라는 건 결국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중진 의원을 교체하는 게 의미가 있다.” 그는 이어 “국회의원 선수가 쌓일수록 기성 정치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우리가 물러나 변화를 일으키겠다. 기성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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