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대통령-3당 대표 회동’에 이은 대통령과의 일대일 회담을 거듭 요구했다.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직전인 7일 오후로 회동 시점을 제안한 것을 두고선 “협상 가이드 라인까지 제시했다”며 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런 황 대표의 태도를 두고 ‘보수 야권의 유일 주자’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국회 파행의 책임을 대통령과 여권에 돌리려는 셈법이란 분석이 나온다.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전날 청와대가 내놓은 ‘대통령-5당 대표 회동 뒤 일대일 면담’ 제안을 거부하면서 “진정한 야당 대표와 일대일로 만나 경제정책 전환 방안을 논의하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 즉각 국회에 들어가서 국정 운영에 적극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우리 당과의 협상 과정을 언론에 흘렸다. 심지어 제1야당을 배제하고 4당 대표 회동만 추진하려고 한 것 같다. 뒤에서 정말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황 대표의 발언에 여당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만나자는 청와대의 제안을 거부하고) 반복해서 역제안하는 것은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에 대한 무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에선 황 대표의 최근 발언을 두고 ‘비토크라시(반대정치)의 전형’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일에 제동을 걸어 ‘실패한 정권’의 낙인을 찍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황 대표가 일대일 회동에 대한 의지가 정말 있는지 모르겠다. 일대일 회동을 제안해 자신의 위상을 높인 뒤 정작 만나자고 하니 자꾸 공을 되넘기며 만남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황 대표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한국당에서 대통령과 독대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원내지도부가 주도해온 국회 정상화 협상 국면에서 보여주지 못한 리더십을 이런 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대선주자 행보에 가까웠던 ‘민생투쟁 대장정’의 ‘피날레’를 대통령과의 일대일 회동으로 장식하려 한다는 진단도 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황 대표는 내·외부적으로 도전이 없는 상태다. 대선 레이스의 한 부분으로 영수 회담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에 맞설 보수의 유일 대안’이라는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국회 파행의 장기화를 방치·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황 대표의 태도를 두고 한국당 의원들 역시 평가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비박근혜계의 한 의원은 “청와대가 일대일 면담 요구를 수용한 상황에서 사전에 5당 대표가 만나느냐 3당 대표가 만나느냐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황 대표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사전 회동의 형식을 문제삼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김미나 김원철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