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의 방랑생활을 끝내고 민주당 산하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장 책임자로 여의도에 복귀한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지난 5월14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로 첫 출근하고 있다. 그는 출근 전날 기자들과 만나 “총선 승리를 위한 병참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책연구소에 대한 관심이 최근 부쩍 높아졌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민주당의 연구소인 민주연구원장을 맡은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사실 주요 정당 정책연구소의 변화 움직임은 자유한국당에서 시작됐다. 지난 3월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정당은 별도 법인으로 정책연구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정책연구소는 말 그대로 정당의 정책을 개발하는 등 각종 연구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국가 예산에서 받는 보조금 중에서 30%는 무조건 정책연구소가 사용해야 한다. 그만큼 법적으로 보장받는 정당 조직이다. 하지만 정당의 정책연구소가 평상시에 일반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를 놓고 매일매일 상대당과 말싸움을 벌이는 선전활동,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입법활동, 당원을 모으고 교육하는 조직 및 교육활동 등 정당이 하는 다른 일에 비하면 정책개발이나 연구활동 등 정책연구소가 하는 업무는 상대적으로 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싱크탱크에 최근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여의도연구원이 경쟁적으로 조직 정비에 나서고 활동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당 외에도 바른미래당의 바른미래연구원(홍경준), 민주평화당의 민주평화연구원(천정배), 정의당의 정의정책연구소(김정진) 등도 있다.
야당의 공유오피스·호칭파괴 실험
두 정당의 정책연구소를 책임진 대표자들부터 뉴스의 중심인물이다. 민주연구원은 정권 ‘실세’로 알려진 양정철(55)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달 중순 원장으로 왔다. 양 원장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을 2012년 정치의 길로 이끌어내고, 2017년 대선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대선에서 이긴 후에는 정권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야인의 길을 스스로 택해 2년 동안 국내외를 떠돌았지만, 실세로서의 위치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다.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은 “여의도연구원을 젊은층과 소통하는 채널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공론포럼 준비모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김 원장. 김세연 의원실 제공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3월 초 3선의 중진의원인 김세연(46) 의원이 원장을 맡았다. 김 원장은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는 성향이 크게 다르다. 부산 금정구 출신의 김 원장은 초선 시절부터 개혁적 보수파로 분류됐다. 18대 국회에서는 소장개혁파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민본21’에서 간사를 맡았으며, 19대 국회에서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활동했다. 지난 대선 때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측근으로 일했으며, 올 초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책임자 교체 이후 양당 싱크탱크의 지휘부도 막강해졌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27일 통상 두세명이던 부원장을 다섯 명이나 임명했다. 당연직인 이근형 신임 전략기획위원장을 비롯해 당내 전략통인 이철희 의원, 친문계 실세인 백원우 전 의원, 당 대변인을 맡은 이재정 의원, 지난해 지방선거 때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던 김영진 의원이 그들이다. 수적으로도 역대 최고이지만, 기획통 3명을 부원장에 배치한 것도 유례가 없다.
여의도연구원도 송언석 의원과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이태용 전 총리비서실 민정실장, 조청래 전 창원시설관리공단 이사장, 박찬봉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등 다섯명의 부원장을 뒀다. 여의도연구원은 특히 20대의 부원장(박진호·29)을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새 책임자 부임 이후 두 싱크탱크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먼저 변신을 꾀한 곳은 여의도연구원이다. 여의도연구원은 김 원장이 온 뒤에 업무 공간과 분위기부터 바꿨다. 서울 영등포 당사에 있는 기존 사무실 외에 동여의도(여의도 광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에 있는 공유오피스 위워크(Wework)의 6인실 사무실을 두 달 기한으로 계약했다. 비상근 임원진과 당 정책위 근무자 등을 뺀 연구원 고유업무 직원 20여명 전원을 최소 1주에서 4주까지 위워크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
김세연 원장은 지난 2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사에 있는 연구원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 키 높이의 칸막이가 처져 있어서 완전히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대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연구원들이 일단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공유오피스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원의 영등포 당사 사무실은 29일 칸막이를 걷어내고 탁 트인 사무실로 공사를 마쳤다) 호칭도 기존의 ‘팀장’ 등 수직적인 느낌을 주는 것 대신에 어부단위의 리더를 ‘리드멤버’라고 부르는 등의 실험을 하고 있다.
양정철 “병참기지는 후방 보급 역할만”
민주연구원은 눈에 띄는 가시적인 변화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양 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총선 승리에 꼭 필요한 병참기지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병참기지론을 내세웠지만, 막상 내부는 아직까지 조용하다. 민주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양 원장이 취임한 뒤에 연구원들과 팀별 식사자리를 갖는 등 소통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흔들리지 말고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는 말을 한다.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민주정책연구원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사회적 경제, 문재인 정부 2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서혜빈 한겨레사회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양 원장은 2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내 여러 조직 간의 벽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 당의 전략기획위원회와 정책위원회와 긴밀하게 협력해서 일을 해나가자는 데에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조정식 정책위의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여당은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구체적인 정책을 만드는 게 중요한 만큼 조용하되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병참기지론에 대해서는 “군대에서 병참부대는 전투원들에게 식량 등 물품을 보급하는 일을 한다. 그것처럼 민주연구원도 총선 승리를 위해 후방에서 돕는 역할 즉, 고유의 업무인 정책과 공약개발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이다. 민주연구원이 총선 전략을 짜고 선거전을 지휘하는 참모본부가 되려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두 싱크탱크의 이런 서로 다른 움직임은 각자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지난 20대 총선(2016년)과 19대 대선(2017년), 지난해 지방선거 등 최근 세 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모두 이긴 민주당이나 민주연구원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보완 발전시키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반면에 세 번 다 패배한 자유한국당과 여의도연구원은 기존의 방식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김세연 원장이 취임한 이후 내년 총선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보다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대 부원장을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김 원장은 “기존 보수정당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를 충분하게 하지 못한 채 자기 관점을 강요하려고 했다. 그래서 꼰대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문제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세력이나 계층만 타깃으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여의도연구원을 밀레니얼 세대까지도 편안하게 올 수 있는 휴식공간 같은 장소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연구원은 여의도연구원에 비해 부족한 여론조사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담당했고, 그 이후에는 민간 여론조사기관을 설립해 운영해왔던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이런 구상의 일환이다. 민주연구원의 한 고위인사는 “여의도연구원처럼 민주연구원이 새삼 장비와 인력을 구해서 여론조사를 직접 할 필요는 없다. 외부기관에 의뢰하더라도 잘 해석하면 된다. 이근형 부원장이 전문가이니만큼 여론 분석 역량은 훨씬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원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당시는 여의도연구소) 출범 이전(사회개발연구소)부터 독자적인 여론조사 기능을 갖췄다. 조사의 정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여의도연구원이 작성한 ‘대외비’의 정세분석·보고서는 핵심 정보와 대안 제시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윤여준 전 의원을 비롯해 고 박세일 의원, 유승민 의원, 정두언 전 의원 등 보수진영의 쟁쟁한 인물들이 여의도연구원을 이끌었다. 하지만,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때 상당히 신뢰를 잃었다. 지금은 인력 면에서도 박사급 6명을 포함해 총 53명(중앙선관위 2018년 자료)에 불과하다. 여의도연구원의 전 고위관계자는 “근년에 들어 당 대표가 실력보다는 자기와 친한 인물을 책임자로 보내고, 여론조사나 보고서 등을 사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많이 망가졌다. 여론 조사하는 ARS(자동전화응답) 기계를 연구원장이 아니라 사무총장 소속으로 두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다. 그래야 총선 때 당 대표가 개입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박사급, 민주당 22명, 한국당 9명
오랜 선두주자 여의도연구원은
당 대표 등 사적 활용 탓 추락
민주연구원은 변화 추구 안보여
자유한국당의 여의도연구원 소속 직원들이 지난 4월부터 서울 동여의도에 있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 두 달 계약으로 빌린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여의도연구원 인스타그램
반면에 2008년 대선 패배 이후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만든 민주연구원(당시는 민주정책연구원)은 후발주자로서 오랫동안 두뇌 확충에 노력해왔다. 2015년 6월에 만든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공동대표 정세균·강철규)를 만들어 우석훈 경제학 박사 등을 영입했던 게 대표적이다. 2011년 박순성 동국대 교수가 책임자를 맡아 연구소의 기틀을 마련한 데 이어 변재일 원장 시절에는 연구원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어 김용익 원장, 민병두 원장 때는 연구인력을 늘려 정책개발 능력을 강화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인력은 지난해 기준으로 박사급 22명 등 총 70명에 이른다. 민병두 의원은 “야당 시절 약했던 부분이 정책개발이었는데 민주연구원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는 이 부분에서 상대당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파 나눠 먹기·당 대표 입김 여전
하지만, 정당 정책연구소는 당에 사실상 종속돼있는 구조인 데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독립적인 정책개발과 연구 수행을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당과는 별도 법인이지만, 당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정책연구소의 인사를 좌지우지한다. 부원장을 두 정당이 각각 5명씩 임명한 것도 실제로는 계파별 안배와 당 실세의 요구 때문이었다는 뒷말이 나온다. 예산의 경우 2018년에 민주당은 국고지원금 57억원을 포함해 모두 60억원, 자유한국당은 국고보조금 60억원 등 총 94억원을 연구소에 각각 배정했지만, 이 중에는 사실상 연구소와는 관계없는 돈이 들어 있다. 정당들이 당 정책위원회에 소속된 당 사무처 직원들을 연구소 인력으로 돌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순수 연구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인 이철희 의원은 “정당 부설로 정책연구소를 운영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인력이나 예산 문제 때문에, 장기적인 과제보다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응 위주로 간다”면서 “그러나 당 대표나 연구소 책임자가 사심만 버리면 당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 이미지 쌓기에 불과하더라도 각 정당이 정책연구소에 힘을 실어주는 경쟁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인 정치투쟁에 골몰하는 것보다 생산적이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수 성향 평론가는 “현재 보여주고 있는 방향 설정이나 메시지는 여의도연구원이 민주연구원보다 나아 보인다”며 “그러나, 한국당의 대표와 원내대표가 퇴행적인 언행을 보이는 상황에서 당 정책연구소가 변화를 위해 애써봐야 정당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느냐. 정책연구소보다 중요한 건 당 지도부의 방향 설정”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