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민주-정의 단일후보’와 자유한국당 후보가 1석씩을 나눠 갖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겉으로 ‘무승부’처럼 보이는 결과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간단치 않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보선 결과가 여권 전체에 보낸 ‘엄중한 경고장’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낙승을 예상했던 ‘노동자 도시’ 경남 창원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데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 통영·고성에서도 큰 득표 차이로 패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정당득표율과 비교해보니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경남 창원성산 지역구에 정의당 후보를 앞세워 ‘대리전’을 치렀다. 양문석 후보를 출마시킨 통영·고성 지역구에는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물론 현역 의원들이 대거 투입돼 총력전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뼈아팠다. 창원성산에선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를 504표 차로 겨우 이겼다. 선거 막판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축구장 유세 논란과 ‘오세훈 막말’ 파동이 없었다면 자칫 자유한국당에 넘겨줄 뻔한 선거였다. 통영·고성에서는 양문석 후보가 정점식 한국당 후보에게 25%포인트에 가까운 격차로 완패했다.
보선 성적표를 두고 민주당 내 평가는 엇갈린다. 지도부와 친문재인계 의원들은 ‘창원은 어쨌든 이겼고, 통영·고성은 후보도 못 내던 곳인데 선전했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에서 나온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통영·고성에서 이기진 못했지만 19대 총선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실제 통영·고성에서 민주당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후보를 내지 못했고, 19대 때는 18.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이어져온 부산경남의 민심 흐름과 이번 선거 결과를 비교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장 최근 치러진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소속 후보를 통영시장과 고성군수에 당선시켰다. 하지만 ‘인물 변수’가 큰 단체장 선거와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민심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가늠하려면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정당득표율을 살펴봐야 한다.
10개월 전 창원성산 선거에서 민주당은 46.6%의 정당투표 득표율을, 정의당은 14.1%를 기록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29.3%에 그쳤다. 범진보와 자유한국당이 ‘6 대 3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압도적 격차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범진보와 한국당은 5 대 5 박빙 승부를 펼쳤다.
민주당이 ‘선전했다’ 자평하는 통영·고성 역시 마찬가지다. 10개월 전 통영은 민주당이 41.3%, 정의당이 4.9%의 정당득표를 한 곳이다. 고성에서도 민주당·정의당의 합산 정당득표율은 45.3%(민주당 40.5%, 정의당 4.8%)로 한국당 45.6%와 대등했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선 60 대 35로 크게 밀렸다. ‘선전’은커녕 ‘참패’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사실상 일대일 구도에 단체장도 여당 소속인데 여당 후보가 35%를 얻은 게 많다고 볼 순 없다”며 “여당의 피케이(PK) 약진이라는 지난 10년간의 흐름이 꺾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결과”라고 말했다.
물밑에선 위기감 들끓지만 ‘쇄신 동력’ 미지수
민주당 안에서도 이번 선거 결과를 ‘민심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뼈아픈 선거였다. ‘탄핵 이전으로 돌아갔다’라고까지 말은 못하겠지만, 유권자들이 마음 놓고 한국당을 찍었다”고 평했다. 한 최고위원도 “겨우 무승부를 했다. 민심이 경고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를 향한 불만도 감지된다. 인적 쇄신과 정책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데 ‘마이웨이’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청와대의 민심 체감도가 떨어지고 대응이 한 박자씩 늦어 의원들 사이에 불만 기류가 팽배해 있다”며 “청와대 일부 수석 경질은 물론 최저임금 등 몇몇 정책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피케이 민심 이반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수도권의 한 다선 의원은 “부울경 민심이 매우 안 좋다는 게 드러났다. 대책 세우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한테 크게 심판받겠다는 걱정이 든다”며 “창원성산에서 투표 마감 시각에 임박해 투표장에 나온 지지층에 계속해서 실망감을 준다면 1년 뒤 총선에선 투표장에 아예 안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쇄신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의원들이 단톡방에서 ‘민심이 위험하다’는 말은 다 한다. ‘쇄신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행동으로 이어질 동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최고위원도 “왕창 져 버렸으면 다르겠지만, 1 대 1의 현상유지라서 움직임을 취하기가 애매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다면 모를까, 아직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4·3 보선 결과에 관해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최근 있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의 부동산 논란과 최정호·조동호 장관 후보자 낙마가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두근반 세근반 마음 졸이며 개표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김원철 김규남 서영지 성연철 기자 wonchul@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 논평 프로그램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