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교섭단체대표 연설
“좌파”,“종북”, “헌정농단” 등
대북·경제정책 등 비판 쏟아내
“정부에 대한 국민 불만 대변
의회라서 오히려 순화한 것”
한국당, 보수결집·대여투쟁 시동
민주 “태극기부대 발언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환한 모습으로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좌파 이념독재’로 규정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거친 언사로 문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며 ‘이념 선명성’을 드러내고, 강력한 대여 투쟁에 나서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중단시키는 등 이례적으로 강하게 항의하며, 향후 펼쳐질 자유한국당의 공세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나 원내대표는 1시간에 걸친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안보·경제 정책을 “좌파 독재”와 “헌정 농단” 등으로 공격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면서 여당을 폭발하게 한 ‘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도 썼다. 최저임금 인상과 탈원전, 4대강 보 해체 등 각종 경제정책을 두고 시장질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이라고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나 원내대표의 ‘강성 발언’이 현 정부에 대한 국민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는 취지였다고 강조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 정부의 실정에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는 국민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의회라서 오히려 순화한 것”이라며 “여당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인 모습은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나 원내대표의 이날 연설이 자유한국당의 향후 전략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강력한 대여 투쟁으로 당의 방향을 정했고, 이번 연설도 그런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 이후 7개월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이어지면서 리더십이 부재한 탓에 당 안팎에서 대여 투쟁력이 약해졌다는 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지난달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서 ‘컨벤션 효과’를 보는데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이 겹쳐 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강한 투쟁’ 모드로 전환하는 중이다.
또 2·27 전당대회를 거치며 극우 성향의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자유한국당 내부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은데다, 황교안 대표 자체의 강경 보수 성향까지 결합하면서 지지층 결집을 위한 자유한국당의 ‘우클릭’ 행보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당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연설 파행 사태를 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 중간에 달려들어 고함지르고 얘기 못 하게 하는 게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민주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나 원내대표를 ‘국가원수 모독죄’로 윤리위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에는 “있지도 않은 죄를 갖고 얘기하는 건 뭘 의미하는가. 그런 부당한 조치가 있다면 정말 단호한 대처를 하겠다”고 했다.
이날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몸싸움까지 서슴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의 강경 대응은 황교안 체제 이후 ‘반 문재인 정부 투쟁’ 기조를 강화하는 자유한국당 공세를 차단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늘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나도 황교안과 똑같다, 김진태의 길을 가겠다’며 태극기 부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회의 큰 파트너인 자유한국당이 우경화로 치닫는 모습에 강하게 질타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치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펼쳐질 ‘강 대 강’ 국면의 전초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경미 김태규 기자 kmle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정치 논평 프로그램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