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은 국민의 요구로 여기까지 왔다. 정개특위에서 합의가 안 되면 원내대표 등 책임있는 사람들이 나서 정치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편안을 합의하기로 한 시한인 1월 말이 가까워오고 있다. 하지만, 정개특위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연동 방안, 의원정수 확대 등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해결책을 들어봤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영국과 미국의 정치 실패를 다루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브렉시트와 미국의 셧다운: 마비 상태의 두 정부(Brexit and the U.S. Shutdown: Two Governments in Paralysis)’?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포퓰리즘 정치로 인한 사회적 혼돈, 그럼에도 양극단의 대결정치로 인해 해결책이 안 보이는 점 등 두 나라 정치의 닮은꼴을 보여준다. 그 원인과 관련해서는 두 나라가 택하고 있는 ‘단순 다수대표제(first-past-the post)’와 ‘승자 독식(winner-take-all)’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스웨덴, 핀란드 등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이 택한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돕는 데 비해 영국과 미국의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 체제를 낳고 이는 결국 정치 양극화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조심스런 진단이 아니더라도 구성원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양당 체제의 효용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의회에 고루 진출해서 절충하고 타협하는 다당제 정치가 사회 안정과 발전에 더 낫다는 사실은 독일 등 유럽국가들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20대 총선에서 1, 2당은 25석 더 얻어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선거제도 개편을 거치면서 영국과 미국처럼 소선거구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 뿐 아니라 유럽식의 비례대표제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는 47석에 불과해 전체 의석(300)의 1/6에도 못 미쳐 효과가 미미하다. 총선에서는 1, 2위 두 정당이 실제 득표율보다 늘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37.0% 득표를 했음에도 의석율은 43.5%를 차지했고, 자유한국당은 38.3% 득표에 의석율 41.5%이었다. 지역구 초과 의석은 민주당은 16석, 자유한국당은 9석이었다.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바른미래연구원 1월8일 토론문). 이는 당시 제3당이었던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의 전신)과 제4당(정의당) 등 소수 정당들의 손실분이다. 1위에게 찍은 표 외에는 다 버려지는 사표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가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있는 것을 보여준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은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의 이러한 괴리를 없애자는 게 핵심이다. ―1월 말까지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편안을 만들기로 했는데 시한을 지킬 수 있나?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이니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저희는 최대한 1월까지 노력해서 합의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쟁점을 추려서 정치협상 테이블로 넘기려고 한다. 거기에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해서 결단해야 한다.”
―정치협상은 누가 하게 되는가.
“일단 지난 번에 5당 원대대표단이 합의해서 정개특위에 넘겼기에 그들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결단을 촉구할 것이다. 정치협상은 원내대표단과 정개특위가 같이 할 수도 있고, 별도의 다른 지도그룹이 맡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각 당에서 책임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지난해 7월 구성에 합의했던 국회 정개특위는 자유한국당이 특위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지난 10월 말에야 지각 출범했다. 특위가 구성된 뒤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하는 발언(이해찬 민주당 대표)이 나오는 등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이어져 특위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지난 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선거제도 개편을 촉구하는 단식 투쟁을 벌인 뒤에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안 적극 검토’, ‘선거제 개혁 관련 법안의 1월 임시국회 합의 처리’ 등 6개 항에 합의했다. ―5당 원내대표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한다고 약속했는데 왜 진척이 더디나? “특위에서 원활하게 논의가 진척되려면 각 당에서 특위에 충분한 재량권을 주고, 특위 위원들도 의지를 가질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특히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를 싣지 않고 있다. 개편안을 내놓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먼저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 선거제도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편은 전체 게임의 룰에 관한 사항이니 한 정당의 사정이나 이해관계에만 끌려갈 수는 없다. 1월말까지 특위의 결과를 갖고 각당 지도부에게 책임을 묻는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지도부의 태도는 최근 바뀐 것 같은데 실제로 의지가 있는 것 같은가?
“지난 연말에 야3당 대표의 단식과 농성을 거치면서 여권은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된 듯하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오랜 세월 자기들의 당론이었기에 어떻게 하든 이 과제를 받아 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식 연동형’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말에 이런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100% 순수 연동형은 큰 정당들이 너무 큰 손해를 보니까 좀 조정하자는 내용이다.”
민주당의 김종민 의원은 16일 정개특위에서 ‘준연동제’와 ‘복합연동제’ ‘보정연동제’ 등 3가지 내용의 ‘한국식 연동형 비례제’를 공개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순수연동형과 달리 지역구 출마자들이 받은 득표도 함께 계산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민주당의 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민주당 방식은 지역구 득표율을 의석배분에 절반 정도 반영하자는 건데, 이건 불합리하다. 작은 정당들은 지역구 출마자 숫자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보다는 낫지만, 순수연동형에 비해서는 대략 50% 수준의 효과밖에 없다.”
“지역구 축소 결단한다면 대환영”
―자유한국당 특위 위원들 가운데는 연동형을 하더라도 농촌 지역은 현행대로 소선거구제,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자유한국당 전체가 아니라 일부의 의견이다. 게다가 민주당과 다른 야3당은 현행 소선거구제 틀에서 연동형을 하자는 입장이다. 독일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가 소선거구제에 연동형 비례제를 결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정식 안으로 제출한다면 특위에서 열어놓고 논의는 할 수 있지만, 현재 다수의 분위기는 중대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는 연동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에서 생기는 득표율과 의석률의 차이(불비례)를 비례대표에 대한 정당 투표와 ‘연동’시킴으로써 상쇄시키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인구 비율에 따라 서울의 전체 의원숫자가 50명이라고 하자. A당이 서울지역 정당 득표율에서 40%를 얻었다고 치면 서울에서 20석을 차지하게 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16명이라면 비례대표는 4석을 배정하는 식이다. 연동형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비례대표 의원 숫자가 많아야 한다. 독일은 지역과 비례가 1 대 1이다. 우리나라 중앙선관위는 2015년에 2 대 1 비율을 제안했다. 현재는 지역과 비례의 비율이 5.4 대 1이기에 2 대 1로 만들려면 지역구 숫자를 아주 많이 줄여야 한다. 정치권이 대체로 합의한 비율은 3 대 1이다. 여기에 맞추려면 현행 의원정수(300석)에서는 지역 225석, 비례 75석가 되어야 한다. 지역구를 현재(253)보다 27석을 없애야 되는데 역시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지역구는 현재보다 약간 줄이거나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비례 의석을 확대하자는 안이 나온다. 전체 의원 숫자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의원정수 확대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두 당은 국민 여론을 들어 현행 의원정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긴 한데 미묘하게 다르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가 된다면 정수 확대를 할 수도 있다는 건데,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강한 반대다.”
―지난번 원내대표 합의에서는 10% 이내의 정수 확대(330석)를 언급했지 않나. 또, 정개특위 자문위에서도 얼마전 360석까지 의원수를 늘릴 것을 제안했는데. “저는 연동형 비례제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높여 좀 더 촘촘히 대변하기 위해서는 의원정수 확대가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국민들이 의원정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건 분명하지만, 국회가 개혁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면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국회의원들이 똑바로 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커녕 본회의를 하지 않고 놀러간다든지 하면서 국민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국민이 동의하겠나. 과감한 국회 개혁을 바탕으로 여야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것을 가지고 국민들께 의원정수 확대를 말씀드려야 한다고 본다.”
―의석을 늘리는 것과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실현 가능성이 높나?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우니 전체 의석을 늘리는 게 그나마 나아 보인다. 그러나, 현행 300석을 유지하면서도 비례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 즉, 두 거대 정당이 지역구를 줄이는 결단을 한다면 그것도 대환영이다.”
“선거구제와 원포인트 개헌은 연동”
―주요 쟁점에 대한 주요 정당들의 의견차 등으로 볼 때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자유한국당의 현재 태도라면 정치협상 전망도 밝아보이지 않는다. 협상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제도 개혁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후에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 과제다. 국민 요구와 압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따라서 국회에서 안 된다면 국민이 나설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아직은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기에 플랜비(B)를 말하기는 시기 상조이다. 만약 협상테이블에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하면 야3당부터 국민과 함께 하는 투쟁에 나설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국민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정치협력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을 중심에 놓고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개헌 문제도 선거구제 개편 뒤에 정개특위에서 다루기로 했는데.
“선거제도가 합의되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논의하자는 게 원내대표 합의사항이다. 제가 볼 때는 단순한 선후 문제가 아니라 개헌은 선거제도 개편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다시 말해 개헌에 대한 담보가 있을 때 선거제도 개편도 가능하다고 본다.”
?무슨 뜻인가?
“원내대표 합의사항에 개헌 조항이 들어간 것은 자유한국당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선거제도 개편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 원포인트 개헌도 하자고 자유한국당이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원포인트 개헌의 핵심 내용은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총리추천제이다. 총리추천제 적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이후부터인 데다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추천하는 식이 되면 여권도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협상 국면까지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러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려고 한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중진의원을 만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6일 오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 <한겨레>와의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6일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연동형 비례제 등 선거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 제1소위원회(위원장 김종민·맨 가운데)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장제원 간사(오른쪽 줄 첫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