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데 대해 ‘헌법 파괴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자유한국당은 기무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는 등 안일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독립수사단을 꾸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할 것을 지시한 데 대해선 오히려 ‘적폐몰이’ ‘침소봉대’라고 반발했다. 댓글 공작,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령 검토 등 기무사의 위법 행위를 도려내기는커녕 비호하려는 자유한국당을 두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작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에 즈음하여 기각 또는 인용 시 촛불집회 또는 태극기집회에 의한 국가적 혼란과 극도의 치안불안 사태에 대비해 군이 취할 수 있는 비상조치 시나리오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이라며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실제 위수령 또는 계엄령을 통한 쿠데타 의도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 정부 여당의 적폐몰이 연장선이라는 의혹이 있다”며 “독립수사단은 적폐몰이를 하거나 국가기관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수사를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을 지낸 김영우 의원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기무사 길들이기에 나선 모양새”라며 “실무 차원의 검토를 확대 해석하고 마치 계엄령을 선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여권의 행태는 (군)조직을 여권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앞서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은 전날 “기무사의 은밀한 문건이 지난주 난데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배경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여권의 의도를 의심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문제의 심각성을 무시하거나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민주주의 파괴를 모의한 것에 대해 역사적인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촛불시민을 상대로 한 무력 진압 시도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태도는 현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려는 속성과 함께, 수사가 이뤄져 실상이 드러나면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몰릴 것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문건에는 수도권 기계화사단을 이동시키는 등 쿠데타 의혹이 적시돼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지낸 인물이나 내각 출신들이 있는 자유한국당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당시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여론 호도가 아니라 수사당국의 철저한 조사 요구를 비롯해 국정조사 및 청문회 등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통한 진상 규명에 앞장서는 것만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밝혔다.
이정훈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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