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석 제1야당의 대변인이 공식발표한 “박근혜가 불쌍하다” 논평이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 지도부는 ‘당이 아닌 대변인 개인 의견’이라며 주워 담기 바빴다. 주워 담는 임무는 본인 역시 “경찰 미친개 몽둥이” 설화로 사과 입장문을 내야 했던 수석대변인이 맡았다. 역대 가장 많은 4명의 당 대변인을 두고 있는 자유한국당 얘기다.
28일 저녁 8시부터 자유한국당은 ‘대변인 컨트롤타워 부재’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검찰은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의 상징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간을 조작하고 최순실씨와 대책회의를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날 저녁 8시19분 나온 홍지만 대변인의 논평은 흡사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진 2016년 9월 수준으로 돌아간 듯했다. “정윤회씨와의 밀회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와 의혹엔 실체가 없다”, “세월호 7시간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란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내려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 “세월호 7시간 난리굿을 한 야당, 시민단체, 좌파언론, 촛불시민은 석고대죄하라”는 것이었다. 논란이 급속히 확산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 2시간 뒤인 밤 10시8분 홍 대변인은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를 “편파적으로 수사받았다”로 바꾼 수정 논평을 냈다. 어디가, 어떻게, 왜 문제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29일 오전 9시30분께 김성태 원내대표가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그는 기자들에게 “우리 당의 입장이 최종 조율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당의) 공식입장으로 확정하기도 어렵다. 어젯밤 나간 홍지만 대변인의 논평은 내용을 수정해 다시 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오전 11시31분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박 전 대통령이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할 말이 없다. 성실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이 국가 위기 대응에 실패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홍 대변인의 논평은 자유한국당 누리집에서 삭제됐다. <에스비에스>(SBS) 앵커 출신인 홍 대변인은 19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대구 달서갑)해 2013~2014년 최경환 원내대표 시절 원내대변인을 했다. 친박근혜계→친유승민계→친박근혜계를 오가다 20대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됐다. 당의 한 의원은 “홍준표 대표의 발언 수위가 워낙 높다 보니 대변인들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유한국당 기존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출범한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에는 1기 조사위 당시 7시간 의혹 조사를 방해한 의혹을 받는 황전원 위원이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다시 포함됐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