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두고 “미투 기획”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정치권 안팎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적폐청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미투 운동을 희화하거나 음모론이나 선거공학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 대표는 미투 운동 초기 ‘나를 포함한 야당을 노린 정치공작’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홍 대표는 지난해 대선 때 과거 자신이 자서전에 쓴 ‘돼지 발정제’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류여해 전 최고위원이 ‘홍 대표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자,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매체를 당사에서 쫓아내고 억대 소송을 제기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과거 검찰 재직 당시 서지현 검사가 당한 성추행을 묵살·무마했다는 구체적 의혹이 제기되자 ‘정치적 기획’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미투 운동으로 연극연출가 이윤택, 시인 고은 등의 성폭력·성추행 사실이 드러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위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으로 갈 줄 저들이 알았겠느냐”고 했다.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의 충격이 여의도 정치권을 덮친 지난 6일에도 미투 운동을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홍 대표의 셈법이 드러났다. 홍 대표는 6·13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당에서 주최한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미투 운동을 좀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좀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급기야 지난 7일 처음 참석한 청와대 여야 대표 회동 환담자리에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미투 운동에도 무사한 것을 보니 참 다행이다”, “안희정(사건)이 임 실장 기획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이후 “임 실장과 친한 사이에서 나온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모든 걸 내려놓은 피해자들의 용기로 출발한 미투 운동을 정권 내부의 ‘권력 암투’ 정도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미투 정치공작화 예언’을 언급했다가 비판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8일 오후 여야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서도 홍 대표의 인식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왔다.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미투 운동의 외침을 장난으로 희화화한 정치인을 몰아내야 미투 혁명을 만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바른미래당 유승민,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등이 참석했지만, 홍 대표는 울산 민생 현장 방문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수석부의장은 당 회의에서 “(홍 대표가) 안희정 전 지사와 관련한 (자신의) 음모론 발언을 농담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건을 공개한) 김지은씨에 대한 또다른 2차 폭력”이라며 “미투를 보는 (홍 대표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 김지은씨에게 공개적으로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폭로를 했던 피해자는 정치기획의 도구였다는 얘기인가.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정유경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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