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대책티에프 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남인순 위원장, 박경미 의원.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정치권은 6일 안 전 지사를 비판하며 관련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미투’(Me Too)의 불길이 옮겨붙은 국회에서 근무하는 여성 보좌진들은 “국회 내 성폭력은 구조적인 문제”라며 “오래 곪은 상처가 터졌으니 또다른 ‘미투’가 잇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는 살아 있는 권력자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의원실을 옮기려 해도 의원과 보좌관 등 상급자의 평판이 채용에 영향을 미치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5일 국회 누리집에 실명으로 상급 보좌관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고발한 5급 비서관 ㅈ씨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보글에서 2012년부터 3년여간 국회의 한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서 근무하는 동안 상급자 ㅎ씨로부터 여러 차례 성희롱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ㅎ씨는 2016년 총선 뒤 채이배 의원실(바른미래당)로 자리를 옮겼다. 채 의원은 이날 “성폭력 사건 가해 당사자가 저희 의원실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매우 송구스럽다”는 입장문을 내고 ㅎ씨를 면직했다.
ㅈ씨가 3년을 견딘 것은 ㅎ씨가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였다. 4~9급의 9명으로 구성된 국회의원 보좌진은 의원과 임기를 함께하기에 ‘4년 계약직’으로 불리지만 실제론 4년의 채용기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방’(의원실)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좌진의 임면권을 쥔 건 의원이기에 사실상 ‘사노비’에 가까운 처지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직원들의 ‘노무’와 사무실의 ‘군기’는 대개 의원의 신임을 받는 실세 보좌관(4급)이 관리하기에 보좌관의 눈 밖에 나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폭력의 강도와 기간은 다르지만 안 전 지사로부터 피해를 입은 김지은씨가 8개월을 견딘 이유를 ㅈ씨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횟수를 더해가며 가해자 입장에서 폭력은 더 쉬워지고 피해자는 심각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누구의 말이 더 신뢰받는 곳인지는 분명하다. 내부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도 고쳐지지 않으면 결국 피해자가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5급 비서관으로 고참 격인 ㅈ씨와 달리 ‘을 중의 을’로 주로 행정업무를 맡는 9급 또는 인턴 여성비서들이 겪는 피해는 더 클 것이라는 게 보좌진들의 설명이다. ㅈ씨는 “현재 함께 일하는 의원을 포함한 동료들이 미투 동참을 지지해준데다 직급이 높은 편인 저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며 “직급이 낮을수록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의원실의 여성 비서관 ㄱ씨도 “행정 비서들끼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어두운 곳에서 일어난 피해에 대해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상급자로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뾰족하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입법기관인 만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푸는 데 이제라도 앞장서야 한다는 게 국회 구성원들의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젠더폭력대책티에프(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민주당의 남인순 젠더폭력대책위원장은 “피해 사실을 아직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국회 내에 독립기구인 인권센터를 조속히 설치해 외부 젠더 전문가를 채용해서 성폭력과 인권 전반에 대한 상담 및 교육 예방업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는 △혐오와 차별적 언어 사용 자제 △불필요한 성적 농담 및 신체 접촉 자제 등 7개 성평등 활동수칙을 마련해 당원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신보라·김순례 등 자유한국당 여성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어 “‘위드유’(with you) 운동을 개진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안 전 지사 사건을 계기로 여성폭력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관련 현안을 짚어나갈 계획이다. 하태경 의원 등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은 안 전 지사의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 차원의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지원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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