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실의 김종철 비서실장은 세계적 인기그룹으로 성장한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노동당, 정의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의 길을 한결같이 지킨 그는 30대 중반에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했고, 국회의원(서울 동작을) 선거에도 출마했던 40대 후반(1970년생) 정치인이다. 그는 방탄소년단을 “비티에스(BTS, 방탄소년단의 영어 약자)”라고 부르고,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A.R.M.Y)”란 이름을 친숙하게 얘기한다. 당연히 그들의 히트곡 ‘피 땀 눈물’, ‘봄날’ 등의 뮤직비디오를 수없이 봤다.
사실 그가 방탄소년단을 바라보게 된 건 세계적으로 열성팬 ‘군단’(A.R.M.Y)을 양산한 그들의 인기 현상 때문이다. “왜 비티에스는 인기를 끌고 있지? 그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답을 찾으려다 팬이 된 것이다.
그가 방탄소년단을 주목한 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정치권과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안정적 지지율을 바탕으로 ‘선거 대세론’을 기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아마추어 정권 심판론’을 내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친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선거 판세를 분석한다. ‘노심초사’(노회찬·심상정 의원과 초선 4명)로 구성된 의석 6석의 정의당은 큰 정당들의 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정의당이 국회와 지방의회(시의원·구의원 등), 전국 동네 곳곳에서 서민의 삶과 정치 악습을 바꾸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리고, 지지자들의 ‘자발적 응원과 결속’(팬덤)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비서실장은 생각한다.
국내 ‘3대’ 기획사(SM, JYP, YG)도 아닌 중소형 기획사(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출신의 방탄소년단은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3당’(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아닌 정의당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편견과 억압의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의 방탄소년단 이름도 정의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연결돼 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인들 가운데 하나인 그들의 뮤직비디오 영상 완성도에 주목한다. 그는 지난 13일 기자를 만나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2억5천만회를 넘긴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뮤직비디오 자체가 하나의 영화 같아요. 가사는 이 영화를 설명해주는 서정시(Lyric) 같죠. 뮤직비디오가 스토리가 있는 영화처럼 완성도가 높아서, 외국의 팬들은 처음 이 영상을 볼 때 한국말 가사를 몰라도 열광하죠.”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는 7명 멤버의 노래와 춤의 완성도뿐 아니라, 그림, 조각상, 여러 미술장치와 색감, 상징적 공간, 은유적 장면 등을 배치해 다양한 해석을 낳도록 만들며 팬들을 노래와 영상에 집중시킨다.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졌고, ‘봄날’ 뮤직비디오는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나오는 가상도시 ‘오멜라스’를 이 노래의 상징적 공간의 이름으로 활용한다. 김 비서실장은 “(세계 팬들이 공감하도록) 방탄소년단 팀들이 문학적 연구도 많이 한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그는 기자에게 “유튜브에 ‘피 땀 눈물 리액션’을 쳐보라”고 말했다. ‘리액션’은 방탄소년단의 신곡 영상이 공개됐을 때, 세계의 팬들이 이 영상을 처음 보는 순간 자신들의 느낌과 반응을 ‘셀프카메라’로 찍어 올린 것이다.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거나, ‘저 장면의 뜻은 뭐지?’처럼 궁금해하는 생생한 반응들이 ‘리액션 영상’에 담긴다. 한 외국팬이 올린 이런 영상의 조회수가 백만건 이상을 기록할 만큼 리액션 영상 반응도 꽤 높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피 땀 눈물’ 과, 이 노래에 대한 ‘리액션 영상’ 모두 “나도 너처럼 그 부분에서 똑같이 반응했다”거나, “나도 그 부분이 궁금했었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영상의 완성도가 공감의 폭발력을 높여 팬층을 세계로 넓혔고, 다시 팬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반응 영상’이 가수와 팬을 ‘팀’으로 결집시키는 효과를 일으켰다고 김 비서실장은 짚었다.
그는 “이 놀라운 인기 현상의 핵심은 결국 비티에스(방탄소년단)와 아미(세계적 팬클럽)가 거대한 한 팀이 됐기 때문이고, 그 팬들이 비티에스의 인기를 육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5월 케이팝(K-POP) 그룹 최초로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초청돼 ‘톱 소셜 아티스트’를 수상했다. 11월엔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공식 초청됐다. ‘톱 소셜 아티스트’ 수상 당시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팬인 ‘아미 군단’의 지원 등에 힘입어 전체 투표의 76%인 3억2000만표를 받아 2011년부터 6년간 이 상을 받은 저스틴 비버 등을 제쳤다.
김 비서실장은 다시 정의당 얘기로 돌아왔다. 그는 아직 당에서 정식 논의한 사항은 아니라고 전제하며,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영상 컨텐츠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정당이 지방정치와 생활을 실제로 바꾼 것들, 또 그것을 바꾸기 위해 (거대 정당과 달리)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 자기 돈으로 정치를 하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당의 지지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정의당을 보여줄 수 있는 (영상) 작품을 내놓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의당 영상’을 본 지지자와 시민들이 ‘정의당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과 반응을 낼 수 있도록 해, “지지자들의 팬덤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치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결속력처럼, 당과 지지자가 연결되는 ‘원팀(One-Team)’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그의 개인 구상과 별개로, 정의당은 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여러 방편을 고민하고 있다. 오랫동안 당 간판이었던 노회찬·심상정 의원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 또 출마시키기가 쉽지 않은 만큼, 당을 향한 주목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가칭 ‘저스티스리그(정의당 리그)’ 같은 프로젝트도 아이디어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당의 30~40대 젊은 정치인 여러 명을 서울시장 당내 경선 후보로 내세우고, 당원·시민들이 이들의 토론회와 정견 발표 등을 지켜보며 탈락자와 후보를 선택하는 데 참여하는 방안 등이다.
정의당의 이런 구상들은 진보정당이 현실 정치에서 분투하는 것과 달리, 전국선거가 되면 거대 정당에 표가 몰리며 고전하는 양상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틈에 낀 정의당이 거대 연예기획사의 성과를 뛰어넘은 방탄소년단 같은 활로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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