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등이 참가한 ‘황유미 추모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2014년 3월5일 오후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서울 태평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저희는 최대한 공정하게 노력하고 있다.”(윤현덕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위원장)
“사과는 안 하고 마치 정당한 일을 한 것처럼 말한다. 공정하단 말은 하지 말라.”(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최저임금위원회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못지 않게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난 8월 말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등 법원 판례를 제때 심사 기준에 반영하지 않는 행태에 뭇매가 쏟아졌다.
이날 오전 첫 질의자로 나선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첫 질문부터 대법원 판결을 거론하며 “산재법 목적에 따른 위원회가 맞느냐. 위원회가 산재가 아니라고 할 때마다 법원은 산재라며 다른 판단을 내린다”고 윤현덕 산재보상재심사위 위원장을 다그쳤다. 대법원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의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첫 인정한 판결에서 “삼성전자와 지방노동청이 영업비밀이라며 관련 정보의 공개를 거부해 유해물질의 구체적 종류나 노출 정도를 증명하기 곤란해진 사정은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강 의원은 “사업자나 행정청이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라며 입장을 물었다. 이에 윤 위원장은 “판례와 다르게 판단했지만 근로자 보호를 몰각하지는 않았다. 공정하게 했지만 (우리의) 판단이 법원하고 달랐다”며 ‘공정했다’고 항변했다. 이에 보다 못한 홍영표 국회 환노위원장이 나서 “변명할 게 아니라 사과를 하라. 윤 위원장이 올해 2월에야 취임해서 잘 모를 수 있으나, 산재를 당한 사람이 위원회에서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아 법원까지 갔다. 잘못된 것은 반성하고 넘어가야 변화가 있지, ‘우린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후에 속개한 국감에서도 윤 위원장의 답변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앞서 윤 위원장은 “주기적으로 법원 패소 판례를 분석하고 있다. 법원 판례를 신속히 반영하겠다”는 내용의 업무보고를 했지만, 강병원 의원은 “동일한 업무보고가 2013년, 2014년, 2015년에도 있었다. 2015년 내놓은 ‘패소 사건 대책 및 개선방안‘에는 ‘법원의 증거해석 경향이 명백한 입증에서 추정으로 변하고 있다. (재심사 기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해놓고서, 왜 계속해서 법원 판례를 재심사에 반영하지 않고 산재로 인정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고, 취업 당시 건강 상태, 작업장의 유해요인 유무, 근무 기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합리적 추론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업무와 질병 사이의 연계성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 삼성 관련 판결에선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더라도 여러 유해 요인이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허용기준 이하의 저농도라 할지라도 상시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희귀질환이 발병하면 보다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며 기존 판례를 더욱 확장한 판결을 내놓았다.
강 의원은 이어 “위원회는 재심사를 할 때 고용노동부 고시와 행정해석도 완전히 무시한다”며, 산재인정 기준 변경에 인색한 산재보상재심사위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에 윤 위원장은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위원회에는 사용자 측 위원만이 아닌 근로자 측 위원도 같이 논의한다”며 “삼성 건의 경우 유해물질과 질병 간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밝히기 쉽지 않다. 과학기술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홍영표 위원장이 또다시 나섰다. 홍 위원장은 “윤 위원장은 아주 자신있게 우리는 어떠한 과오도 없고, 절대적으로 공정하다, 그런 빗나간 확신에 가득찬 사람 같다. 삼성 백혈병 문제는 명백하게 국가기관이 잘못한 것이다. 객관적 증거들이 나오는데 기관장이 ‘우리는 공정했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윤 위원장은 “최소한 공정하려는 노력은 해왔다”며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강 의원은 “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고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도 따르지 않았다. 자료도 없이, 현장조사도 없이 산재가 아니라고 하니 결국 믿지 못하고 법원으로 가는 것이다. 남들은 다 이해하는데 위원장 혼자 이해 못하는 척한다”며 꼬집었다. 윤 위원장은 마지못해 “앞으로는 미비한 점이 보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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