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논의 마친 3당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자유한국당 정우택(오른쪽부터), 바른정당 주호영,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개헌안 관련 논의를 마친 뒤 떠나고 있다. 2017.3.15 hihong@yna.co.kr/2017-03-15 08:36:03/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일장춘몽’이었다. 5월9일에 대통령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원내지도부의 ‘기습 합의’는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 ‘부도’가 났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공조를 기대했던 더불어민주당 개헌파도 “개헌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거리를 두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15일 아침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주승용,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5월 대선 때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뼈대로 한 개헌안 국민투표를 함께 하기로 국회 개헌특위 3당 간사들과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는 이들의 합의에 즉각 제동을 걸었다. 3당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한다는 건 ‘한여름밤의 꿈’같은 일이다. 법안 하나도 4당이 합의를 안 하면 상정조차 안 되는데, 원내 제1당을 빼고 3당만으로 큰일을 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벌어진 일이다. 개헌은 빨리 이뤄질수록 좋지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정당들만으로) 개헌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원내지도부간 합의와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도 “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개헌에 반대한다”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3당 합의의 한 축인 국민의당 지도부가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개헌안을 발의해 정국을 ‘개헌 국면’으로 전환시키려던 개헌파들의 구상은 사실상 좌초했다. 자유한국당(94석)과 바른정당(32석)의 의석수를 모두 합쳐도 개헌안 발의 정족수(150명)에는 24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39석) 일부가 가세해 발의에 성공하더라도 개헌안 의결 정족수(200석)을 채우기는 무망한 일이다. 30여명에 이르는 민주당 내 ‘조기개헌파’ 대부분도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대표적 조기개헌파인 이종걸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자유한국당이 개헌을 주도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게다가 5월 대선에 맞춰 단일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붙인다는 것도 국회와 국민 동의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번 ‘개헌 소동’은 대통령 탄핵 뒤 존립 위기에 직면한 자유한국당과 창당 이후 구여권의 소수파로 전락한 바른정당이 ‘세력 보존’과 ‘정치적 재기’를 위해 개헌을 고리로 세력 판도를 흔들어보려는 정략적 구상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제3지대 세력화’를 추구하는 국민의당 내 중진 그룹, 민주당의 ‘비문재인’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개헌론의 세를 불렸지만, 상이한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어 개헌의 실질 동력을 확보하기엔 애초부터 역부족이었다.
다만,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불발되더라도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재인 연대’는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정치권과 국민의 찬성 여론이 상당한 데다, 궁지에 몰린 구여권 세력이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로 개헌을 꼽고 있는 탓이다.
차기 집권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개헌에 대한 태도 역시 변수다. 민주당의 또다른 개헌파 다선의원은 “문 전 대표가 ‘2018년 개헌안 국민투표’를 약속했지만, 개헌세력 내부에는 문 전 대표가 집권 뒤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상당하다”며 “개헌을 고리로 ‘반문재인 연대’가 형성되는 것을 막으려면 문 전 대표 스스로 개헌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의 임기와 연동된 개헌 적용 시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의원 등이 ‘대통령 임기 단축’을 고리로 각 당의 개헌세력을 규합해 ‘문재인 포위구도’를 만들려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세영 김남일 오승훈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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