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서,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각종 예우도 대부분 받을 수 없게 됐다. 현직 대통령에게 보장된 형사상 불소추 특권도 사라졌다. 다만, 경호·경비와 관련된 예우는 그대로 유지된다.
박 전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거나 자진 사퇴했다면, 연금(연간 약 1억원)과 기념사업, 경호·경비, 교통·통신 및 사무실, 병원 치료,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이런 예우의 예외 대상으로 △재직 중 탄핵 △금고 이상의 형 확정 △처벌 회피 목적의 해외 도피 △국적 상실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항은 다른 예우를 박탈하더라도 ‘필요한 기간의 경호·경비’는 제외로 규정으로 하고 있다. 탄핵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대통령이라도 최고 수준의 국가기밀을 다뤘던 인사라는 점에서, 적절한 수준의 경호는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정상적 퇴임 시에는 최대 15년(10년 + 5년 연장)까지 경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중도 퇴임하는 경우엔 최대 10년(5년 + 5년 연장)으로 기간이 줄어든다. 경호 인력은 전직 대통령 내외를 기준으로 통상 25명 안팎이 배치되지만, 미혼인 박 전 대통령은 20명 수준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 경호실이 맡게 될 10년의 경호 기간이 끝나더라도, 이후 경찰이 필요에 따라 적절한 경비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를 위해 편성된 예산의 집행 여부도 관심사다. 정부는 박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건물 신축 예산으로 지난해와 올해를 합쳐 역대 사저 예산 중 가장 큰 금액인 67억6700만원을 책정한 바 있다. 당장 경호를 시작하려면 경호실 직원들이 머물 수 있는 건물을 서울 삼성동 사저 옆에 신축해야 하는데, 경와대 경호실은 최근까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예산이 전부 집행될지도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호·경비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박탈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은 몇 가지 추가적인 예우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훈법과 여권법, 국가장법 등이 규정하고 있는 전·현직 대통령 예우 조항이 이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사흘째에 받은 국내 최고 영예의 무궁화대훈장을 반납하지 않아도 되고, 파면 뒤에도 관용 여권을 받아 상대국 비자 발급을 면제받고 공항 브이아이피(VIP) 의전도 받을 수 있다. 사망 시 ‘국민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국가장이 치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야권 일부에선 파면된 대통령의 경호나 기타 편의가 유지되는 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없애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탄핵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의 경호와 예우를 박탈하는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 바 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지난해 말 상훈법·여권법·국가장법 등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법률 개정안은 이미 박 대통령이 탄핵돼 소급 적용의 부담이 있을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반대 등으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야인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지낼지, 누가 주변을 보좌할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당장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야 할 처지다. 유영하·손범규 변호사 등 지금껏 수사와 탄핵 심판 때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인사들이 법률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검찰과 특검의 칼날을 피해 나간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도 여전히 박 전 대통령 주변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인 윤전추 행정관도 당분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미 예우가 박탈됐기 때문에 국가지원을 받는 공식 보좌진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뒤 경호를 위해 소속을 비서실에서 경호실로 옮긴 이영선 행정관은 공식 경호팀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특검이 기소한 이 행정관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강제퇴직 처분을 받게 된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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