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실 앞에서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기위해 나오는 권성동 위원장에게 특검기간연장 법안을 직권상정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월 임시국회’가 2일 사실상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처리한 안건은 168건에 이르지만, 선거연령 인하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등 야권이 입법을 벼른 개혁법안들은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1월 국회가 설 연휴와 각 당의 내부 정치일정 등으로 정상적 의사 진행이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소야대 4당 체제’의 실질적 데뷔 무대였던 2월 국회의 초라한 성적표는 20대 국회 잔여 임기 3년의 암담한 미래를 보여주는 예고편으로도 읽힌다.
4당 체제에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출범 당시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바다. 일각에선 한 정당의 독주가 불가능해진 만큼 한국 정치에 부재했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뿌리내릴 절호의 기회라고 반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교섭단체가 넷으로 늘면서 조정과 합의 절차는 복잡해졌고, 이해관계 대립이 첨예한 안건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지루한 대치를 이어가는 교착상태가 일상화된 것이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다. 4당 체제 (원내대표 노릇) 정말 못해먹겠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121석)과 국민의당(39석), 정의당(6석)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검찰·언론·재벌개혁 법안들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94석)의 완강한 반대와 바른정당(32석)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었다.
4당 체제의 한계에 더해 ‘국회선진화법’이란 제도가 의사 결정의 비효율성을 심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로 제한한 국회법 85조(2012년 개정)가 소수파의 의사일정 발목 잡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이 합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단계에서 막힌 박영수 특검 연장법안이 대표적이다. 상임위 처리가 어려워지자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정 의장은 국회법 절차를 어길 수 없다며 거부했다. 재적 의원 5분의 3이나 상임위 소속의원 5분의 3의 찬성이 있을 때 교섭단체 간 합의 없이도 최장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 법안 상정을 가능하게 한 국회법의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 조항도 특검 연장법처럼 촌각을 다투는 안건에는 ‘독소 조항’이나 다름없었다.
2월 국회에서 나타난 입법 교착을 풀려면 4당 체제라는 경쟁 구조를 해소하거나 제도적 제약 요건인 선진화법 조항을 없애는 게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유권자 선택으로 만들어진 다당 체제를 3당이나 양당구도로 인위적으로 바꿀 경우 정치권 스스로 정당성의 기반을 허물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결적 양당구도’의 편의적 해법이었던 선진화법 조항 역시 다당구도에 걸맞게 손질이 불가피하지만, 법 개정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입법 교착을 4당 체제와 선진화법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태도”라고 했다. 선진화법이 요구하는 높은 ‘입법 문턱’은 추후 법 개정을 통해 낮추더라도, 주어진 입법 여건 아래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현행 국회법 어디에도 상임위 안건 상정부터 교섭단체 간 합의를 필수조건으로 규정한 조항은 없다. 소수정당에 대한 존중은 안건의 심의단계에서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것이지 상정과 표결에선 민주주의 일반 원칙인 다수결에 따르는 게 맞다”고 했다. 다당제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연합정치가 활성화된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안건의 상정·표결 단계에서 소수정당의 비토권을 무제한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도 “다당구도가 자동적으로 연합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은 아니다. 양당구도의 관행에서 벗어나 연합정치의 기술과 마인드를 익히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문제 유형은 ‘4지선다형’으로 바뀌었는데, 여전히 정치권은 ‘O·X 선택형’ 시절의 ‘찍어 풀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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