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가 16일 충남 예산의 충남도의회에서 열린 임시회 본회의에 출석해 주요 안건을 살펴보고 있다. 예산/연합뉴스
야권 대선주자들의 ‘중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중도·보수 성향의 전직 관료 그룹을 대거 영입하는가 하면, 지지층 반발을 불사하며 보수정당과의 ‘대연정론’마저 주저없이 펼친다. 대선주자 전체 선호도 1·2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의 최근 모습이다. 야권 주자로서 ‘선명성’ 부각에 주력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최근 ‘안보 보수’ 노선을 강조하며 ‘중도 복귀’를 서두르는 가운데, ‘흙수저 진보’를 표방해온 이재명 성남시장(민주당)의 하향세가 뚜렷해지면서 야권의 대선 레이스가 ‘중원을 향한 질주’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야권의 이런 모습은 정치권의 전통적 선거 전략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16일 “지금까지 대선 레이스는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레이스 초반에는 집토끼(전통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고, 중반에 산토끼(중도·무당층) 공략에 나섰다가, 선거일이 다가오면 집토끼 재결집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대선에서 이 공식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전통 지지층 결집 단계를 생략한 채 곧장 외연 확장을 위한 경쟁 국면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촛불 정국’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3개월 넘게 이어진 촛불 정국을 거치며 야권 지지층이 자발적으로 결집하면서 대선주자들로선 굳이 집토끼 단속에 힘을 쏟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시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 일정의 촉박함도 이런 흐름을 강화시켰다. 수도권이 지역구인 민주당 다선의원은 “모든 대선주자들이 5월초 대선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상황이다. 지금 중도층 확보에 실패하면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없다”고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6일 충남 태안 남면 신온리 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에서 재학생과 비행 시뮬레이터를 체험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민주당 후보 선출이 당원과 일반 국민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는 ‘개방형 경선’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모바일·인터넷 투표가 허용돼 전통 지지층이 아닌 일반 국민의 참여 문턱이 낮아지면서, 경선 단계부터 중도·무당층의 선호에 부응하려는 주자들 움직임이 분주해졌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론이나 충청대망론, 문재인 전 대표의 ‘사드 재협상 신중론’ 역시 경선에 참여할 중도·무당층을 의식한 전략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당내에선 ‘본선보다 치열한 경선’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그동안 야당 경선에 무관심했던 일반인의 참여가 활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조기에 불붙은 야권 주자들의 중원 확보 경쟁이 본선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의견이 엇갈린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대통령제에서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게 필수지만, 선거 승리를 위해선 핵심 지지층의 확신과 열정도 중요하다. 정당에 있어 핵심 지지층은 ‘1인1표’의 단순 유권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선거 국면에선 지지 후보에 대한 열정을 갖고 여론을 주도하고 주변을 설득할 적극적 지지층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나친 중도화는 핵심 지지층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어 ‘확장성’을 오히려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치학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장은 “역대 대선에서 야권 주자들의 중도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번 대선의 경우 일관된 철학과 정체성을 갖고서 중도·통합 노선을 추구하는 주자가 야권에 있다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폭을 넓히거나 지지층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있어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등 야권 내부에선 중원 확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기존 지지층이 ‘외연 확대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수용 가능한 선이 어딘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존 이슈와 의제들에서 오른쪽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보다, 중도·무당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
이세영 최혜정 기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