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교체” 발언 참신함 떨어지고
청년실업에 “인턴 확대” 현실 무지
진보적 보수 전략 ‘부메랑’ 전망도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박관현 열사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광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에 오니 어려우면서, 어렵다.”
18일로 귀국 일주일을 맞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날 김해 봉하마을에서 털어놓은 이 말이, 대선 행보에 나선 그의 솔직한 속내로 보인다. 귀국 뒤 영·호남과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발언과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하며 온 국민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내놓는 일주일 성적표는 후하지 않다.
우선 이도 저도 아닌 ‘반반 행보’가 광폭이긴 하지만 참신함이 없고, 대중에게 그를 각인할 임팩트 있는 메시지도 빈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유엔 10년 의전에 익숙하다 보니, ‘대단한 사람 왔다 간다’는 정도의 옛날 방식을 쓰고 있다. 상대방이 ‘진짜 나를 도와주겠구나’라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 마음을 바꿀 생각을 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하루에 광주와 여수, 대구, 대전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보고 “마음이 급해서 일정도 급하다. 잃은 게 더 많다”는 평을 내놨다. 귀국 뒤 일주일의 중요한 시기에 대중을 끌어당길 정교한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명록만 쓰다 끝났다”(새누리당 재선 의원)는 것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귀국 일성으로 내놓은 ‘정치교체’ 구호도 안철수나 박근혜 후보가 반복해서 활용해 신선감도 떨어지고 충격파도 약하다. 보수정권 10년과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높아진 ‘정권교체’ 프레임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현장을 방문해 내놓은 발언도 대한민국의 정치·사회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언급하며 “인턴 확대”와 “자원봉사”, “해외 진출” 등을 언급해 청년들의 분노만 키운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전남 영암의 농촌 마을을 방문해서는 쌀 수맷값 폭락에도 “정부의 어마어마한 농업보조금 때문에 (생산원가가 높은) 한국 쌀은 수출할 수 없다”고 상황과 안 맞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세계 지도자들과 네트워크가 많다. 정상외교를 통해 (선박 수출을) 확대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대안 부족을 드러낸 장면으로 꼽힌다. 국정 전반을 살필 콘텐츠가 부족하고 준비도 덜 돼 있다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동발매기에 지폐 두 장을 넣는 실수 등이 주목받으며 ‘10년 동안 떠나 있어서 한국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확대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지지율을 합쳐 20%가 안 되는 등 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이 뭘 하든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바른정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를 한 번도 안 해본 점을 고려하면 순발력도 좋고 지금껏 큰 실수 없는 무난한 행보였다”고 말했다.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며 진보·보수 모두를 아우르려는 그의 전략이 머지않아 ‘딜레마’로 돌아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수의 지지를 받는 그가 진보를 아우르려다 양쪽 모두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강경보수층이 지금은 지켜보고 있지만 일단 보수 정체성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반감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국민의당은 반 전 총장과 거리를 벌리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내에 반 전 총장에 대한 회의론이 꽤 있다”고 전했다. 석진환 이경미 기자 soulfat@hani.co.kr[언니가 보고 있다 49회_반기문 쫓아다닌 “나쁜놈들”의 고백]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