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중임제 찬성론자로 배치’ 주문
김부겸 “당 공식기구가 단결 해쳐”
김부겸 “당 공식기구가 단결 해쳐”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 관련 전략보고서가 당 안팎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개헌 논의에 대한 분석과 당의 대응 전략을 담고 있는 이 보고서는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작성했지만, 내용 일부가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쪽에 치우친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지도부의 ‘중립성’ 시비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인다.
보고서는 추미애 대표 등 당 최고위원단과 당 대선주자인 문재인·이재명·박원순·안희정·김부겸 등 모두 15명에게 전달됐는데, 보고서 전문이 3일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국회 개헌특위 구성과 관련한 지도부의 대응 전략을 기술한 부분이다. 보고서는 특위 위원 인선과 관련해 “국민 다수가 찬성 입장인 4년 중임 대통령제에 긍정적이거나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의원을 다수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균형 차원에서 적극적 개헌론자 또는 이원집정제(분권형 대통령제) 주장자의 특위 참여를 소폭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개헌의 가장 첨예한 쟁점인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 특정 견해가 과다 대표되도록 위원 인선 단계부터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정의당과 국민의당 등 다른 야당이 도입을 주장하는 결선투표제에 대해선 “최대한 모호성을 견지해도 좋을 것”이라며 사실상의 ‘저지 전략’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 이념지형의 흐름에서 보면 보수적 성향이 진보적 성향보다 많은 추세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양자구도에서 진보세력에게 불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영·미 정치학계에서는 결선투표제에 대해 ‘독재와 친근한 정치제도이고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조작적 정치제도’라고 평가하는 게 정설”이라는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고서가 공개되자 김부겸 의원 등 당내 개헌론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은 성명을 내어 “당의 공식기구인 민주연구원이 벌써 (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된 것처럼 편향된 전략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특정 후보 편향의 활동은 당의 단결과 통합을 해치는 해당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전 대표나 추미애 대표가 대선 전 개헌 논의 불가를 고수하는 것은 당내에서는 다른 주자들에게도 고립되고 당 밖에서는 ‘기득권 정치’ 프레임에 갇힐 수 있으니 사전차단 또는 출구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희 쪽에 (보고서가) 오긴 왔다고 하는데 연말연초 지방 다니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 대선주자들에게 골고루 배포가 되었다고 하니까 무엇을 특정한, 그런 보고서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안희정·박원순·이재명 등 다른 대선주자들도 “보고서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기동민·김성수·김병기·이훈 등 초선 의원 20명도 성명을 내어 “개헌에 대한 우리 당의 진정성을 의심케 만들고 있다. 특히 경선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특정인을 당의 후보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강창일·이상민·정성호 의원 등 비주류 성향 인사들이 모인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가칭)도 성명을 내 당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추미애 대표는 이날 오후 초선 의원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어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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