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소속 의원, 당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국민주권운동본부' 출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전국민적 퇴진 요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기’에 나서면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통과부터 보수 성향 재판관들로 꾸려진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성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긴 여정이 예상되지만, 야권이 박 대통령 퇴진에 뜻을 모은 이상 탄핵 카드를 꺼내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 탄핵 카드 만지는 민주당·정의당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사임 거부는 확실해졌다.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들어가겠다. 후속 법적 조처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버티면 탄핵소추를 통해 끌어내리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가능성을 공개적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추 대표는 이날 ‘법적 조처가 탄핵을 염두에 둔 것인지’를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탄핵을 언급하는 것은 빠르다”고 선을 그었다.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탄핵을 시행으로 옮길 때는 아니지만, 예비·검토·예열 단계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를 밝혀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과 국정조사가 시작도 안 한 상황에서 급하게 탄핵소추를 꺼내진 않겠지만, 탄핵 카드를 쥐고 압박하면서 물밑으로 실행을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의당은 좀더 적극적으로 “탄핵소추 절차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이 공식 일정을 재개하며 국정 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만큼, 탄핵소추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 행사부터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당은 박 대통령이 끝내 국민을 거역하는 상황에 대비해 헌법에 따른 탄핵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만약 국회의 탄핵소추가 여의치 않다면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 등 ‘국민탄핵’의 방법도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물밑에서라도 탄핵 가능성을 타진하며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딜레마 야권이 선뜻 탄핵 절차에 착수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적 고려 때문이다. 야 3당 의원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의 수를 모두 합쳐도 171명으로 탄핵안 가결을 위한 정족수(200명)에 못 미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서 17일 “우리 야권을 전부 합쳐도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29석이 더 와야 할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대통령 퇴진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며 “만약 거기(국회 본회의)서 부결되면 모든 게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됨과 동시에 박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부담도 있다. 이 때문에 박지원 위원장 등은 “일단 국회가 추천해 총리부터 새로 세우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탄핵을 주장하는 심상정 대표는 “문제 인식은 잘 알지만 (탄핵을 위한) 법률적, 정치적 요건들을 충분히 준비하는 작업을 서두르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가서 기각될 가능성도 변수다.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하지만 현재 재판관 가운데 7명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여러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유일한 길은 탄핵뿐이라는 데에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헌재의 성향을 볼 때 탄핵의 결과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탄핵은 그걸 다 알고도 안할 수가 없는 싸움이 됐다. 회피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일단 국회를 통과해 헌재까지 가면 전에 본 적 없는 도도한 민심을 헌재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새누리 ‘탄핵 찬성’ 얼마나 될까 이번 주말 최순실씨의 공소장이 공개되고 앞으로 특검팀이 꾸려져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행위가 더 드러나기 시작하면 탄핵을 향한 발연점은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관건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얼마나 이탈해 탄핵이라는 열차에 올라타느냐에 달려 있다. 새누리당 내에선 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탄핵론이 번져 왔다. 탄핵론의 중심에 선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정권퇴진 시도는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이므로 야당은 그런 행위를 중단하고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안에 대해 탄핵을 소추하고 국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을 거듭 주장했다.
지난 15~16일 <국민일보> 조사에 응한 새누리당 의원 101명 가운데 27명이 탄핵 절차로 가야 한다고 응답했고 이 중 18명은 탄핵안 통과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비박계 일부의 탈당 현실화 조짐과 탄핵론이 맞물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검·국정조사 진행에 맞춰 연쇄 탈당이 이뤄진다면 탄핵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지원 김진철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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