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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트럼프 짤방’ 어떻기에…야당의원이 인용했다 망신

등록 2016-11-10 16:56수정 2016-11-10 17:15

정치BAR_엄지원의 측면 지원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선거운동을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며 선거에 이용했던 것을 저희는 잘 기억하고 있다.”

10일 아침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윤호중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다. ‘최순실게이트’로 인해 전방위적으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9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와 정상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겠냐는 우려를 표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윤 의장 쪽은 곧바로 이 발언을 철회했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윤 의장은 민주당 공보실을 통해 “트럼프 당선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했다고 한 발언은 확인 결과 사실과 달라 정정합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공당의 지도부가 어떻게 이런 큰 ‘실언’을 하게 됐을까.

주승용 이어 윤호중도 ‘풍자’ 이미지 확인 없이
“트럼프가 선거운동 중 박대통령 조롱했다” 발언
청와대 곧바로 반박…일부선 여혐 정서 지적도

윤 의장의 발언은 최근 에스엔에스(SNS)상에 떠돌던 한 장의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 당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당선자의 사진에 “누가 여성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한국을 보게 하라”는 말풍선을 합성한 이미지다. (와이티엔)은 이 ‘짤방’(그림·사진등 이미지를 통칭하는 말)을 혼동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발언을 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한국의 언론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해프닝이다.

청와대는 곧바로 윤 의장의 발언을 지적하고 나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확인 결과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우리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윤 의장이 공식석상에서 한미 정상회담 같은 국가 중대사를 이렇게 언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야권이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촉구하며 압박하는 가운데 청와대로선 역공의 ‘빌미’를 얻은 셈이다.

‘트럼프의 여성 대통령 비하 발언’을 인용한 국회의원은 비단 윤 의장만이 아니다. 앞서 10월30일 국민의당 긴급대책회의에서 주승용 의원은 “오늘 아침에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 연설에서 보면 ’여자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 대통령을 보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제 망신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국민의당 소속인 송기석 의원은 10일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대토론회에서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니…”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말을 직접 인용하진 않았지만 오보 속 발언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다.

이런 야당 의원들의 발언이 문제되는 것은 회의 석상에서의 발언이 단순히 ‘오보’여서만은 아니다. 그같은 발언이 담고 있는 ‘여성혐오’적 성격 때문이다. 애초에 에스엔에스 상에서 퍼진 트럼프의 발언도, 성추문 사태 등에서 드러난 그의 여성혐오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가상의 표현이다. “트럼프가 박 대통령을 조롱했다”는 발언이 설령 사실이라 해도, 발언자의 젠더감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최근 녹색당 등은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타고 번지는 여성혐오 발언들에 우려섞인 성명을 낸 바 있다. ‘오보’를 인용한 야당 남성의원들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점이 있다. 박 대통령이 비판받는 것은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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