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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변명·꼬리자르기로 일관한 박대통령 ‘9분 담화’

등록 2016-11-04 12:21수정 2016-11-04 12:26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개인 일탈로 치부
연설문 수정·청와대 자료 유출 언급 없고
‘직접 모금 독려’ 사실과도 동떨어진 인식
거국내각 등 정부기능 회복 ‘어떻게’ 빠져
박지원 “세번째 사과할 단초 제공” 비판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명’과 ‘꼬리자르기’로 일관한 9분짜리 대국민담화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4일 두번째 사과 역시 안이한 현실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민과 야당이 원한 ‘진솔한 사죄’와 ‘수습 방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을 여전히 최씨와 일부 측근 참모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이 점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라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 재단은 ‘국익’을 위한 ‘선의’에서 시작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과 일탈은 자신과 무관할 뿐더러 그런 사실에 대해 자신은 인지조차 못했다는 얘기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직접 재벌기업 총수들을 만나 기금모금을 독려했다는 사실과도 동떨어진 설명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대통령 담화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서 추진한 일인데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댈 만큼 아프게 느꼈다”며 “최순실·안종범 사단이 대기업 발목을 비틀어가지고 돈을 거둬 한 일이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한 일이라고는 아무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또다른 세번째 사과를 요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

박 대통령은 최씨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에 국한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할 개인사를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고 왕래하고 됐다”며 최씨의 역할이 ‘개인사’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국무회의 자료와 외교관련 보고서 등 국가기밀을 보고받고, 연설문까지 고쳤다는 의혹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국가 위기상황’을 이유로 ‘단합’과 ‘협조’를 호소하는 방식은 여전했다. “안보가 큰 위기에 직면해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니 “국정 혼란과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런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안보·경제위기와 지금의 국정공백을 초래한 당사자가 대통령 자신이라는 인식은 빠져있다. 박 대통령의 고질인 ‘남탓’과 ‘유체이탈 화법’을 다시 한번 시연한 것이다.

정부기능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국회와의 한마디 상의 없이 서둘러 지명한 것에 대해선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당 관계자들 입에서 나온 ‘거국내각’이나 ‘책임총리’에 대한 설명도 전무했다. 유일하게 밝힌 것은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 원로와 종교지도자,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겠다”는 것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전날 김병준 후보자가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밝힌 ‘사회·경제분야 전담 책임총리’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 선을 그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사실상 대통령 자신이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겠다는 얘기다.

검찰수사와 관련해서도 “필요하면”이란 단서를 붙여 “저도 성실히 임할 것이며 특검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 대목 역시 ‘적극적으로 수사를 받겠다’는 책임 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선 “공정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가 염려해 모든 말씀을 못 드리는 것 뿐”이라며 미뤘다. 역시 국민의 기대수준과는 동떨어진 태도다. 박 대통령이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얘기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인지능력과 판단상태가 ‘비정상이 아님’을 애써 강조한 것이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개인의 2차 기자회견은 본인의 개인 기자회견 수준이다. 1차에 부족했다는 진솔한 사과 그리고 수사받겠다는 정도가 추가됐을 뿐 국정농단과 국정마비의 총체적 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아울러 이러이러한 국정마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소통해나갈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빠져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아주 미흡한 기자회견”이라고 평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박대통령, ‘최순실 국정농단’ 대국민담화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정을 믿고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어제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되었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국민이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왔는데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 과제들까지도 모두 비리로 낙인 찍히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일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만큼은 꺼뜨리지 말아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합니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오늘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입니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이번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 되어야만 합니다.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만 합니다.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인들과 종교 지도자분들, 여야 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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