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일본 제이아르(JR)의 명물인 에키벤(열차 도시락)은 지난해 탄생 130주년을 맞았다. 일본 에키벤 누리집(ekiben.or.jp)의 설명을 보면, 1885년(메이지 18년) 매실 장아찌가 들어간 주먹밥에 참깨와 소금을 뿌리고 단무지와 함께 대나무로 싸서 판매한 것이 에키벤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본 전역으로 철도 노선이 확장하면서 지역 특산물과 음식 문화가 결합한 에키벤이 급격히 늘어나 현재 2000여종의 에키벤이 전국 기차역과 열차에서 팔리고 있다. 한해 판매량은 6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음식만화 강국답게 에키벤만을 주제로 한 만화도 나왔다. 현재 에키벤 누리집에 등록된 것만 초밥 112종, 고기류 147종, 해물류 131종, 나물류 26종 등 681종에 달한다. ‘가을 미각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매돼 한정판매에 들어간 에키벤도 여러 종류다.

한국에서도 열차 도시락이 팔린다. 블로그에 코레일 열차 도시락 사진을 찍어 올리는 여행객들도 많다. 열차 도시락은 코레일관광개발이 판매한다. 치킨치즈덮밥, 불고기치즈덮밥, 단호박두부스테이크, 제육불고기, 햄버거스테이크, 청매실떡갈비 도시락 등 6종류다. 관광열차를 이용하는 단체관광객들이 요청할 경우 보쌈, 고추장제육, 오징어덮밥, 치킨데리야끼 도시락이 제공가능하다고 한다. ‘기차역(역사) 도시락’도 있는데, 이는 코레일유통이 판매를 맡는다. 역사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은 김밥·초밥·불고기·돈가스 등 15종, 역사 도시락전문점에서 파는 도시락은 55종이다.

그런데 코레일 열차 도시락 매출이 계속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코레일관광개발로부터 받은 열차 도시락 판매 현황을 보면, 2012년 한해 86만227개(64억9800만원 어치)가 팔렸던 것이 해마다 줄더니 지난해에는 54만4564개(43억7500만원 어치)로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올해의 경우 8월까지 27만2913개(21억6700만원 어치)에 그쳤다. 판매량이 줄면서 코레일관광개발 매출에서 열차 도시락 판매가 차지하는 비율도 9%(2012년)에서 5%(2015년)로 떨어졌다.

판매가 줄어든데는 이유가 있었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조사한 열차 도시락(4종류) 고객만족도 평가(2014년 11월)를 보면, 밥의 양 불만(31%), 찬의 구성 불만(33%) 응답이 많았다. 전체적인 만족도는 39%가 만족, 보통은 34%, 불만은 27%였다. 10명 중 3명은 나중에 열차 도시락을 다시 사먹지 않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학재 의원은 최근 편의점 도시락 열풍을 거론하며 열차 도시락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 의원은 “편의점 도시락들은 1인 가구, 혼밥족 증가 등으로 종류가 다양하고 반찬의 질도 좋아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추석때는 나물과 잡채, 전 등이 담긴 명절 도시락까지 출시돼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7배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편의점업체는 도시락 11종, 김밥 2종을 2800원에서 최고 4500원 가격으로 판매하는데 반찬 구성 등에서 5000원~1만원에 팔리는 코레일관광개발의 열차 도시락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의원은 “열차 도시락 값이 일반 편의점 도시락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비싸더라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사먹겠지만, 일반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이 훨씬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기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기차여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열차 도시락 수준으로는 새로운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는 여행객들을 기차여행으로 유인할 매력이 없다”며 “일본 에키벤처럼 지역 특산물과 대표음식을 주메뉴로 하는 열차 도시락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