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단식농성 닷새째를 맞은 30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불을 꺼놓은 채 잠들어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단식의 정치
YS·DJ 등 야당 지도자 단식
정국 전환점 이룬 적 많아
정세균, 단식 성과 못 거둬
이, “목숨 바칠 각오했다”
YS·DJ 등 야당 지도자 단식
정국 전환점 이룬 적 많아
정세균, 단식 성과 못 거둬
이, “목숨 바칠 각오했다”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투쟁은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이다. 단식은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호소할 수단이나 방법이 마땅치 않은 야당 정치인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그래서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단식을 주로 비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2014년 10월 대정부질문에서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라며 단식투쟁을 “국회의원의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 목숨을 건 야당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정치의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83년 야당 지도자 시절 김영삼의 단식이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압적으로 짓밟은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때였다. 집권 민정당과 관제 야당(민한당)이 정권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정치를 논하고, 대학가도 숨을 죽이던 시절이었다. 상도동 자택에 감금돼 있던 김영삼은 5·18 3주년인 83년 5월18일 민주회복, 정치회복 등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 5개항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의 단식투쟁은 정권의 보도통제로 인해 국내 언론에는 ‘현안 문제’라는 암호 같은 용어로만 짧게 보도될 수 있었다. 정권은 그에게 해외 출국을 권했지만, 김영삼은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6월9일 23일째 단식을 풀었지만, 김영삼의 투쟁으로 재야와 학생운동이 다시 불붙었다. 결국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평민당 총재 김대중의 단식도 정국의 물꼬를 바꿨다. 그는 민자당의 지방자치제 연기에 항의해 1990년 10월 단식투쟁을 벌였다. 90년 초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여소야대의 4당 체제 시절에 합의했던 1991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경제 안정을 이유로 들어 1995년으로 연기했다. 이에 김대중은 내각제 합의 파기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집권당 대표가 된 김영삼이 김대중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91년 지방의원 선거를 하고, 95년에는 기초단체장 선거 등 전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내각제 대신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김대중은 13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계열에서도 당 대표가 단식한 사례가 있긴 하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은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을 청와대에서 거부하자, 특검법 재의를 요구하면서 단식을 했다. 특검법이 국회에서 재의됨에 따라 그는 10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그러나 정치적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던 단식도 적지 않았다. 2009년 7월 통합민주당 대표 시절 정세균은 미디어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영수회담을 제안하면서 단식을 벌였지만, 여당은 보란 듯이 강행처리했다. 정세균은 이에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낸 뒤 한동안 의원 활동을 중단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지난 26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투쟁 각오는 비장하다. 그는 그날 의원총회에서 “의회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저는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다”며 “거야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선 비상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여당 대표의 단식에 대해서는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그가 최병렬 전 대표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아니면 정세균 전 대표처럼 빈손으로 돌아설지 주목된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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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요구하며 5·18 3주년인 1983년 5월18일부터 단식투쟁 중인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이송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내각제 합의 파기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 중인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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