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의장·여야 3당 원내대표 방미때 만나
정진석 “경험·지혜 한국서 써달라” 주문
반기문 “내년 1월 귀국 보고하겠다” 화답
오세훈 “경선에 굉장한 활력소 될 것”
김무성쪽 “관심 끌기에 나쁘지 않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18일 새벽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각각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차릴 것 별로 없던 여권의 추석 차례상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선물세트’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내년 1월 중순 이전 귀국”, “(국민들께 보고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 대선 행보로 해석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풍성했다. 지지율 5%(한국갤럽)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로서는 덩달아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씁쓸한 재미’를 보면서도 ‘반기문 대세론’을 어쩌지 못하는 고약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8일, 정치권은 미국에 있는 반 총장을 또다시 화제로 삼아야 했다. 의원외교차 미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뉴욕에서 반 총장을 만나면서 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상차림’을 주도한 이는 반 총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인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10년간 쌓은 경험과 경륜, 지혜를 국내 문제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써달라”고 주문하고는 “귀국한 뒤 국민들께 크게 보고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고, 반 총장은 “(그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결심한 대로 하시되 이를 악물고 하셔야 한다”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메시지를 반 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방미 직전 서울 청구동 김 전 총리의 집을 방문해 이같은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귀국 시점을 묻자 “1월 중순 이전”이라고 답했다. 임기가 올해 12월31일인 점을 감안하면 10년 유엔 생활을 마치고 곧바로 귀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불과 엿새간의 방한 일정 동안 대선 출마를 강하게 내비치며 정치권을 들쑤셔놨다. 이후 6~9월 넉달 연속으로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 통틀어 1위(지지율 26~2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새누리당 유력 대선 주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5%),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2~3%)는 기세를 펴지 못했다.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모두 5% 벽 아래에 머물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충청지역 의원은 “이번에도 영남권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4번 연속이 된다. ‘또 영남이냐‘, ‘영남은 좀 아니다’라는 여론이 많다”고 했다. 반 총장을 단순히 ‘충청 대망론’ 주자로서가 아니라, ‘비영남권’으로 규정해 확장성을 최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시에, 새누리당의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물론 더민주의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에까지 ‘또 영남’이란 꼬리표를 붙이려는 속내도 읽힌다.
대부분 비박근혜계인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로서는 당 지도부가 미국까지 가서 ‘반기문 띄우기’를 하는 데 대해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외에 계신 분이 적절한 시점마다 메시지를 주며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굉장한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무성 전 대표 쪽은 “현재 여권의 어려운 난국을 돌파할 유일한 카드는 반 총장밖에 없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로 쏠리는 국민의 관심을 여권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반기문=불쏘시개’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반 총장이 막상 경선 무대에 오르면 검증 과정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쩌면 이게 반 총장 이외의 새누리당 주자들의 ‘기대 섞인 속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한 대선 주자 쪽 관계자는 “아직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 않은 상황에서 20% 후반 지지율은 평가할 만하지만, 역으로 30%를 못 넘는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다른 대선 주자 쪽 인사는 “2002년 1월 이회창, 2007년 1월 고건, 2012년 1월 안철수도 모두 지지율 1위였지만 그해 대선에서는 아무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