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더불어민주당 자치단체장들의 도전
더불어민주당 자치단체장들의 도전
▶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 등 자치단체장들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의 살림을 돌보는 행정가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며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모임인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 소속 단체장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지금껏 여의도 국회의원들이 차지했던 최고위원과 시도당위원장을 자신들도 하겠다며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이들의 목표가 뭔지, 뜻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19일 충남 공주의 교통연수원 강당은 후끈 달아올랐다. 막바지 무더위도 기승을 부렸지만, 이곳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충남 지역 합동연설회 분위기는 유독 뜨거웠다. 김상곤, 이종걸, 추미애 등 당 대표 후보들의 연설 대결도 팽팽히 진행됐으나, 이날 연설회장을 달군 것은 2부의 충남도당위원장 경선이었다. 도당위원장 자리를 놓고 박완주 후보(재선의원·천안을)와 나소열 후보(보령·서천 지역위원장)가 맞붙었다. 충남 현역 의원들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박 의원으로 합의 추대하기를 바랐지만, 나 위원장이 출마를 고집하면서 경선이 불가피했다.
먼저 연설에 나선 나 후보는 “변화의 바람이 제주와 경남, 경북에서 불고 있다”며 원외의 지역위원장이 현역 의원을 잇따라 이기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 뒤 “이는 판을 바꿔라, 변방의 목소리를 들어라, 여의도정치를 뛰어넘으라는 당원들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박 후보는 “내년 대선에서 실패하면 당의 존재 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며 “충남도당을 정권교체의 태풍 진원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의원 투표 결과 박 후보가 54%를 얻어, 나 후보(46%)를 이겼다.
주목받는 ‘자치분권회의’
지난해 전당대회 때 충남도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해, 현역이던 당시 박수현 의원을 이겼던 나 후보는 이번 대회에서는 패배했다. 그러나 실패하긴 했으나 그의 재도전은 지난해와는 정치적 의미나 비중이 다르다. 지난해에는 전직 군수(충남 서천) 출신의 지역위원장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도전에 나선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다면 올해에는 지역의 요구와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해야 한다는 조직적 결의에 따른 도전이다. 결의의 주체는 더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모임인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공동대표 나소열 김영배 박승원·이하 자치분권회의)이다. 자치분권회의는 “자치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인천(박우섭 남구청장)과 충남(나소열 전 서천군수), 광주(최영호 남구청장) 세 명을 내세웠다.
이번 더민주당 시·도당위원장의 정치적 무게는 이전과 다르다. 시·도당의 조직 관리와 운영을 맡는 데 그치지 않고,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활동했던 혁신위원회의 당 혁신안에 따른 변화다. 13개 시·도위원장 가운데 서울·제주, 경기·인천, 충청·강원, 영남, 호남 등 5개 권역별로 한 명씩 호선된 5명의 시·도위원장은 중앙당 최고위원을 겸하게 된다. 최고위원회의에는 이 밖에 여성·노인·청년·노동·민생 등 부문별로 뽑힌 5명과 당연직 2명(당 대표와 원내대표)이 들어간다. 따라서 시·도당위원장의 정치적 발언권은 과거에 비하면 천양지차라고 할 정도로 세다.
도전 결과는 현재까지는 실패다. 지난 13일 광주시당위원장 경선에서 최영호 후보가 이형석 후보(광주 북을 지역위원장)에게 패배한 데 이어 나 후보도 이날 고배를 마셨다. 현장에서 이뤄진 대의원 투표에서는 216표 대 160표로 훨씬 앞섰지만, 권리당원 사전 투표에서 35% 대 65%로 뒤지는 바람에 졌다. 더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원들에게는 단체장의 정치 활동이 아직 잘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 ‘지방반란’ 선봉
그러나 당 대표 경선을 위한 컷오프 투표에서는 자치분권회의 쪽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2강으로 분류됐던 송영길 후보가 예상과 달리 탈락하고 당내 기반이 약한 김상곤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치분권회의의 조직적 지지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자치분권회의 쪽 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경기교육감 시절 무상급식 이슈를 들고나와 국가적 의제로 만들었던 김 후보는 자치분권회의의 주요한 롤모델”이라며 “회원들이 1차 투표 때 김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말했다.
인천의 경우 20일 오후에 시당위원장 경선 결과가 나온다. 박남춘 의원(남동갑)과 맞붙는 박우섭 남구청장은 ‘지방 반란’의 선봉에 선 인물이기에 인천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전당대회 때 그의 최고위원 도전이 한국 정치에서 지역정치의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박 구청장은 당시 전당대회장에서 “이제 중앙이 지방의 소리,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며 “생활정치의 힘, 현장의 목소리로 여의도의 권력 독점을 종식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반란은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반란이다. 우리의 반란은 국회에 대한 원외, 지방의회의 반란”이라며 “자치와 분권, 지방의 힘으로 여의도에 갇혀 있는 정치를 해방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격정적인 연설에 힘입어, 출마 후보 중 인지도가 가장 낮았던 그는 현장 대의원 투표에서 1위(16.24%)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전에 이뤄진 여론조사와 권리당원 투표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지도부 진입에 실패했다.
박 구청장의 지난해 도전은 지방정치의 힘을 보여준 시작에 불과했다.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는 지난해 박 구청장을 혁신위원으로 발탁했다. 이들의 결합은 결국 권역별 최고위원제 도입이라는 당 지도부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현역 의원들 위주로 꾸려지던 중앙당 지도부에 원외위원장이나 지방단체장도 들어갈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 및 광역의원 400여명이 참여하는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를 결성(2015년 8월)함으로써 지방정치의 세력화에 성공했다. 자치분권회의는 결속력이 강해 당내의 주요 세력의 하나로 떠올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당 대표 후보들을 불러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내년 대선 후보 선출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당 시도당위원장 경선
기초단체장 3명 도전 나섰으나
광주·충남 패배로 갈길 멀어
시도당위원장 중 5명은
호선으로 최고위원 겸직 지방정치인 당내 세력화 가속
당 대표 선거에도 영향력 발휘
“서울·중앙 정치 깨야” 목소리
지방 분권화 방향엔 긍정하나
“실질적 분권이 중요” 지적도 자치단체장들의 당 지도부 도전은 자신들의 표현대로 서울 중심의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의 거부 내지는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국회의원이 독점했던 정치를 지역 정치인도 공유하자는 요구이다. 지방분권 활동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정창교 서울 관악구 정책실장은 “무상급식이나 청년 수당 지급 등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은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장, 성남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제기했던 것”이라며 “여의도 정치는 이제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상자기사 참조)에서 “서울 중심의 권한 집중을 깨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과 갈등 소지는 숙제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의 도전은 지방자치제 실시가 20년을 넘어가면서 지방의 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은 “프랑스는 연속 3명의 대통령이 풀뿌리 경험자들이 뽑히는 등 지역정치가 변방은커녕 오히려 중앙무대의 힘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선거 때 낙하산 공천이 횡행하는 등 서울과 중앙 위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도 지방에서 성장한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20대 총선 당선자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출신이 29명이 나왔다”며 “더민주당은 123명 당선자 중에 15명에 불과하지만 갈수록 이들의 참여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역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과 단체장의 중앙당 진출은 별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앙당의 한 주요 당직자는 “단체장들이 당 운영에 많이 참여하도록 해서 지역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들의 중앙당 진출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자칫 잠재적 경쟁자인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들과의 갈등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과)는 “지역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는 등의 분권화로 가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이 최고위원이 되느냐 여부보다는 실질적 의미에서 권한이 배분되고 정당 하부조직의 자율성이 보장되는지가 분권화 진전을 위해서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주/글·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19일 충남 공주시 충남교통연수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한 박완주(왼쪽 둘째), 나소열(셋째) 후보가 안희정 충남도지사(맨 왼쪽), 양승조 의원(맨 오른쪽)과 함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투표 결과 박 후보가 충남도당위원장에 선출됐다.
19일 충남 공주시 충남교통연수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충남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상곤(오른쪽부터), 이종걸, 추미애 후보가 나란히 앉아 부문별 최고위원 후보들의 연설을 듣고 있다.
기초단체장 3명 도전 나섰으나
광주·충남 패배로 갈길 멀어
시도당위원장 중 5명은
호선으로 최고위원 겸직 지방정치인 당내 세력화 가속
당 대표 선거에도 영향력 발휘
“서울·중앙 정치 깨야” 목소리
지방 분권화 방향엔 긍정하나
“실질적 분권이 중요” 지적도 자치단체장들의 당 지도부 도전은 자신들의 표현대로 서울 중심의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의 거부 내지는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국회의원이 독점했던 정치를 지역 정치인도 공유하자는 요구이다. 지방분권 활동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정창교 서울 관악구 정책실장은 “무상급식이나 청년 수당 지급 등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은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장, 성남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제기했던 것”이라며 “여의도 정치는 이제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상자기사 참조)에서 “서울 중심의 권한 집중을 깨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과 갈등 소지는 숙제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의 도전은 지방자치제 실시가 20년을 넘어가면서 지방의 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은 “프랑스는 연속 3명의 대통령이 풀뿌리 경험자들이 뽑히는 등 지역정치가 변방은커녕 오히려 중앙무대의 힘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선거 때 낙하산 공천이 횡행하는 등 서울과 중앙 위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도 지방에서 성장한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20대 총선 당선자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출신이 29명이 나왔다”며 “더민주당은 123명 당선자 중에 15명에 불과하지만 갈수록 이들의 참여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역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과 단체장의 중앙당 진출은 별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앙당의 한 주요 당직자는 “단체장들이 당 운영에 많이 참여하도록 해서 지역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들의 중앙당 진출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자칫 잠재적 경쟁자인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들과의 갈등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과)는 “지역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는 등의 분권화로 가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이 최고위원이 되느냐 여부보다는 실질적 의미에서 권한이 배분되고 정당 하부조직의 자율성이 보장되는지가 분권화 진전을 위해서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주/글·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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