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 자리서
“대통령이 기념식 오지도 않고” 발언도…
“지금은 왕을 뽑아” 개헌론도 설파
“정병국∙주호영 단일화 지원”
친박계 “지금 자기정치 할 때냐”
비박계 “잘못을 잘못이라 하지”
민생탐방을 시작한 지 사흘째인 3일, 광주를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구묘역에서 바닥에 깔린 ‘전두환 비석’을 비켜 지나고 있다. 이 비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참배객들에게 밟고 지나라가는 의미로 깔아 놓은 것이다. 김 전 대표는 “나는 밟을 수 없지”라고 말하며 비석을 비켜 지나갔다. 광주/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구·경북(TK) 지역 초·재선 의원들의 면담이 4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가운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전당대회 전에 대통령이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았다. 지난달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그간 참고 참았지만 이제 선봉에 서겠다”고 했던 김 전 대표가, 8·9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과 본격적인 각 세우기에 나서며 대선 몸풀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근혜계는 “지금이 자기 정치나 할 때냐”며 부글부글했다.
지난 1일부터 호남지역 민생투어에 나선 김 전 대표는 3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과 티케이 지역 초선 의원들의 면담을 어떻게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갈등과 관련한 의견 청취 자리라는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를 밀어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면담하는 추경호·김정재 의원 등 초선 10명과 성주가 지역구인 이완영 의원(재선) 등 11명은 대부분 친박계로 분류된다. 특히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을 향해 “잘못”이라는 공격적 표현을 동원한 것은 전례가 없다. 박 대통령과 관련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침묵이나 웃음으로 넘어가던 기존 태도와 확연히 다르다.
김 전 대표는 이날 하루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를 이어갔다. 평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할 것을 주장해온 김 전 대표는 “매년 이 노래 때문에 (국론) 분열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매년 (기념식에) 오지도 않고…. 이런 분열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방문한 광주청년센터에서는 “지금은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왕을 뽑는다”며 박 대통령이 꺼리는 개헌론을 거듭 꺼내들었다. 청년들이 대선 도전에 대해 묻자 “과연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 고민하고 다니는 중”이라고 답했다.
김 전 대표는 한편으로는 전당대회에서 비박근혜계 당대표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는 비주류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이 새누리당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주류 후보 중에 정병국·주호영 두 후보가 곧 단일화할 것이다. 그럼 (단일화한 사람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친박계는 김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의식해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비난했다. 한 재선 의원은 “전당대회를 대선 전초전이라고 생각하니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가 좁다 보니 인위적으로 판을 만들려는 속셈”이라고 깎아내렸다. 다른 재선 의원은 “대선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반쪽 지지’를 받고 당내 경선에서 이긴들 본선(대선)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 같으냐”고 했다. 4일 박 대통령을 만날 예정인 초선 의원들도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 누굴 지지하고 싶으면 다른 루트를 통해서 뜻을 전달하지, 그런 공개 모임을 갖겠느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비박계 쪽 인사들은 “‘잘못된 만남’을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맞서고 있어,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