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맨 오른쪽)이 16일 오전 국회 집무실에서 가습기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서명’을 전달받고 있다. 오른쪽 둘째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회 개원사를 통해 개헌 논의에 불을 댕긴 정세균 국회의장이 16일 “개헌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20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개헌의 추진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장과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개헌 논의를 끌고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공론화 과정 없이 여의도에서 (정치인들끼리) 이뤄지는 논의는 의미가 없다”며 개헌론과 선을 그었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금 많은 분들이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지난 30년간 사회의 다양한 변화 흐름을 수용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담아내는 개헌이 돼야 한다. 개헌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개헌의 시기와 관련해선 “가능하면 20대 국회 전반기에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국회에 개헌 관련 자문기구가 여러 차례 가동됐고, 연구 성과도 상당 수준 축적돼 있으니 논의를 본격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의장실 산하에 개헌 특위를 설치하자는 전날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내정자의 제안과 관련해선 “자문기구는 의장의 의지로 둘 수 있지만, 특위는 교섭단체들이 당의 지지자들과 사전 공감을 하면서 (합의를 해야 한다)”며 공을 여야 각당에 넘겼다.
하지만 이날 무소속 의원 4명의 복당으로 ‘원내 제1당’에 복귀한 새누리당은 집권 후반기에 개헌 논의가 공론화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런 기류는 당 주류인 친박근혜계에서 특히 강하다. 개헌론이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동조했던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 임기가 후반으로 가는데 개헌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면 정치는 올스톱이다. 지금은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은 경제와 일자리,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인이 먼저 해결하라고 요청한다.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의도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하는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개헌특위 설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특위를 따로 두는 것보다 19대 국회처럼 정치개혁특위를 꾸려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개헌을 공론화할 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야당은 개헌에 우호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논의할 때가 무르익은 건 맞지만, 실현 가능성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개헌은 추진 주체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게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청와대나 당이 나서지 않으면 논의가 탄력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대선주자들도 겉으로는 찬성하지만 뚜렷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대통령 되는 게 우선인 이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개헌특위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논의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원론적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원내정책회의에서 “헌법 개정안이 확정되더라도 국회 의결 등 100일 이상 소요되는 일정을 생각하면, 개헌 논의는 빠를수록 좋다. 이제 논의의 문을 열어야 할 때”라고 가세했다.
리얼미터가 이날 공개한 개헌론 여론조사에서는 ‘개헌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69.8%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12.5%)을 압도했다.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과 관련해선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응답이 41%로 가장 많았고, 분권형 대통령제(19.8%), 의원내각제(12.8%)가 뒤를 이었다. 조사는 지난 15일 전국 성인 515명을 상대로 유무선 전화로 이뤄졌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다.
이세영 이경미 기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