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극적으로 타결된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대해 여야 3당은 손익의 균형추를 맞춘 협상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3당의 대차대조표를 면밀히 비교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명분을,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실속을 챙겼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은 19대 때보다 의석이 큰 폭으로 줄면서 2개의 상임위를 내줘야 할 상황이었다. 협상 전략 측면에서 보면 잃어도 크게 아쉬울 게 없는 상임위를 내주는 게 최선이었던 셈이다. 결국 새누리당은 협상을 통해 ‘국회의장을 내주더라도 운영위와 경제 관련 상임위는 반드시 지킨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으로선 야당이 요구했던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지킨 게 성과다. 총리실과 각종 정부 위원회를 포함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을 맡는 정무위, 예산 편성과 세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소관 부처인 기재위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뼈대를 다룰 뿐 아니라 곧 진행될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을 감시하고 살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문화방송>(MBC) 경영을 관리하는 방송문화진흥회, <한국방송>(KBS),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담당하는 미방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의 언론 장악 논란이 벌어진 여야의 격전장이었다.
새누리당은 또한 원래 갖고 있던 예결·외통·윤리위를 내준 대신 더민주가 갖고 있던 법제사법위원회를 얻었다. 정치적 비중이 엇비슷한 예결위와 법사위를 맞바꾸면서, 포기해야 할 상임위 2개로 애초 의도했던 외통·윤리위 카드를 관철시켜 손실을 최소화한 셈이다. 특히 청와대를 소관 기관으로 둔 운영위를 사수하고, 국방·정보위를 지키는 등 권력기관들에 대한 방어막을 확보한 것은 ‘성과’라고 자평할 만한 대목이다.
국민의당은 원내 38석의 제3당이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라는 내실 있는 상임위를 확보했다. 두 상임위는 그동안 야당이 갖고 있던 상임위 가운데 소관 기관의 규모와 예산 면에서 ‘알짜’로 평가돼온 곳이다. 학교·문화체육시설처럼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밀착한 사업과 예산을 다루는 교문위, 공공기관이 50여개에 이르는 등 소관 기관이 많은 산자위는 ‘젖과 꿀이 흐르는 상임위’로 통한다. 국민의당은 의원단의 다수인 호남지역 의원들이 ‘호남 대표성’ 확보 차원에서 농해수위를 강력히 원했지만, ‘명분’을 포기하고 실속을 택한 것이다. 당내에선 경제·민생 정당 이미지를 살리는 데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이 나온다.
반면 더민주는 국회의장과 예결·외통·윤리위를 얻은 대신 법사·교문·산자위를 내줬다. 실리를 키우기보다 제1당으로서 명분과 권위를 챙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특히 제1야당으로 본회의 사회권을 갖는 국회의장을 확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하지만 원내 제1당이 국회의장을 갖는 게 ‘총선 민심을 따르는 순리’라고 강조해온 더민주 입장에선 ‘마땅히 가져야 할 자리’를 챙겼을 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결위는 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수단인 예산 심의권을 강화하고 지역구 민원 예산을 확보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지만, 선진화법의 예산 자동상정 조항 때문에 과거처럼 마음먹고 예산안을 손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외통위의 경우 ‘정치적 상징성’은 작지 않지만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힐 일이 많지 않은 상임위라는 점에서 실익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더민주로선 복수의 소관 부처를 담당하는 상임위에서 법안심사소위를 복수로 둘 수 있게 한 점은 성과다. 이는 우상호 원내대표의 공약이었을 뿐 아니라, 통과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정부입법안 심사를 면밀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행정권력에 대한 견제권과 국회의 입법권을 내실화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언니가 보고있다 #22_새누리의 파안대소, 더민주의 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