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5·18 민주화운동 36주기를 맞은 광주는 2017년 대선 도전을 노리는 야당 정치인들의 ‘구애 경쟁’으로 뜨거웠다. 본선 도약의 1차 관문인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18일 5·18민주묘역 기념식장에는 문재인·안철수·손학규·안희정 등 야권의 잠재 후보군이 한데 모였다. 지난 주말 광주를 미리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에서 별도로 열린 기념식에 참석했다.

‘정계은퇴 상태’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계 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그는 이날 5·18묘역을 찾은 뒤 측근과 지지자 등 600여명과 함께한 오찬 모임에서 “우리는 4·13 총선 결과를 깊이 새기고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제대로 안아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을 다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손 전 상임고문 쪽 관계자는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는 차원을 넘어, 새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데 주목해달라”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대선 승리를 위한 야권 최적의 카드가 누구인지를 두고 집단지성이 발휘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손 전 상임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0주년을 맞는 7월쯤 정계복귀 선언이 있을 것이란 일각의 관측에 대해 손 전 고문 쪽은 “구체적인 복귀 플랜이나 일정표는 나온 게 없다. 야권, 나아가 정치권의 재편이라는 새로운 상황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미 야권의 유력주자 2명이 대선 지지도 1·2위를 달리는 현 상황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으로선 복귀의 명분과 계기를 자력으로 마련하는 게 힘들다는 고심이 엿보인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광주를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던졌다. 안 대표는 이날 광주지역 언론사 대표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없다. (다만) 새누리당에서 합리적 보수성향 인사가 (국민의당에) 온다면 받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가능성’에 대해서는 “새누리당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나를 음해할 목적으로) 나오는 이야기 같다”고 일축했다. 총선 직후 연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면서 호남지역 지지율이 하락하자, 호남의 거부감이 큰 새누리당과의 연정설에 명확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동요하는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전날 광주에서 전야제 일정을 소화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이날 기념식이 시작되기 40분 전 행사장에 나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는 기념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논란인지 알 수 없다. 오늘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당당하게 부르고 다음에 저희가 지정곡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기자들과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논란의 주제가 아니다. 정부는 공연한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호남과의 접촉면’을 늘리고 있는 박원순 시장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해 “제 인생 또한 광주정신에 빚졌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서울시장으로 살아오며 광주정신은 제 믿음과 소신이었고 제 행동의 근거였다”며 ‘광주와의 일체감’을 강조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