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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평 좋고 일 잘하니께 한번 더 밀어줘부렸제”

등록 2016-05-13 20:15수정 2016-05-16 10:25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전남 순천시 연향2지구 호반3공원에서 열린 ‘엉뚱발뚱’ 제1호 기적의놀이터 개장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  이정현 의원실 제공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전남 순천시 연향2지구 호반3공원에서 열린 ‘엉뚱발뚱’ 제1호 기적의놀이터 개장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 이정현 의원실 제공
[토요판] 르포
이정현과 순천 민심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7월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전남 순천에서 연거푸 당선됐다. 1988년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호남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계열의 여당 의원이 재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거세게 불었던 박근혜 심판 바람을 이겨내고, “녹색 돌풍도 문재인의 방문도 안 통했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순천을 찾아가고, 이 의원을 만나봤다.

“이정현이 평이 좋지라. 일도 잘하고, 그라니께 한번 더 밀어줘부렸재.”

지난 11일 오전 순천 아랫장에서 때아닌 막걸리 토론이 열렸다.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한다는 배경옥(54)씨와 배씨의 동네 형님 김재휘(60)씨가 막걸리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기 위해 61호점 둥근 양철탁자에 앉았다. 안주로는 이 집의 명물인 5천원짜리 최고급 동태전이 나왔다.

이정현(57) 의원의 승리 이유에 대해 배씨가 단순 명쾌하게 정리하자, 김씨는 조근조근 설명했다. “1년 반 전 보궐선거 때 이정현이가 예산 폭탄을 쏟아붓겠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찍어줬는디, 폭탄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산을 많이 끌어왔다고 하더만. 민주당 도의원들도 다 인정하는 것이여. 또 순천 의대 유치 등 이정현이 벌여놓은 사업들이 많고 하니께 마무리하라고 기회를 한번 더 준 거이지.”

여당의원 최초 호남 지역 재선
“싹쓸이 대신 경쟁 복원하고
지역구도에 큰 균열 내” 자평
“당소속 안 따지고 찍었다”
순천시민들 ‘호남 변화’ 강조

머슴론 내세워 주민에 밀착
마을회관 자고 이장집서 아침
잠바입고 자전거로 골목 대화
선거땐 매일 주사맞고 유세
“녹색바람·문재인도 겁 안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7월 보궐선거에 이어 20대 총선에서 또다시 전남 순천에서 당선된 것은 한국 정치사의 새 기록이다. 새누리당 계열의 여당 의원이 야당 텃밭이자 진보의 토대인 호남에서 두번 당선된 것은 1988년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15대 선거(1996년) 때 강현욱 의원(전북 군산을·신한국당)이 최초로 호남에서 당선됐지만, 그는 16대 총선을 1년 앞둔 1999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듬해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결국 옮겼다. ‘인물은 훌륭하지만 당 때문에 더는 지지할 수 없다’는 지역 유권자들의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야도 호남의 역사에 비춰 이 의원의 재선은 확실히 이변이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거세게 불었던 박근혜 정부 및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 바람, 호남에서의 국민의당 돌풍을 이겨냈다. 이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측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승리는 더욱 놀랍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 보선 때 승리의 주요 기반이었던 고향 곡성이 선거구 개편에 따라 이번에는 순천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에게는 안팎으로 불리한 선거였다.

“국회의원의 순천 모델 만들고파”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그는 “진정성이면 넘지 못할 벽이 없더라”면서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호남에서 지역구 재선은 처음인데?

“1995년(광주 시의원 선거)부터 서울 등 수도권으로 나가라는 것을 거부하고 호남에서 계속 출마한 것은 싹쓸이 정치를 극복하고 경쟁이 살아 있는 정치를 복원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이긴 건 우연일 수 있었는데 이번에 또 당선됨으로써 호남의 경쟁 정치가 시작된 게 제일 기쁘다. 더 기쁜 것은 지난번 나의 당선을 계기로 경상도에서도 자각과 성찰이 이뤄져 이번에 여러 사람이 당선된 것이다. 수십년간 닫혔던 지역주의 문을 7·30 보선에서 순천 사람이 열어놓은 뒤 이제는 호남과 영남에서 서로가 들락날락하는 통로가 생겼다. 정치한 보람을 느낀다.”

-진짜로 호남 유권자들이 변했다고 보는가. 이제 당을 따지지 않는가?

“진짜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제대로 된 인물만 내면 당을 따지지 않고 찍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좋은 후보를 발굴해서 지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새누리당은 비겁하다. 새누리당은 호남 포기 전략을 이제 포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여론조사에서 밀리기도 했었는데?

“새누리당 공천 문제가 하루 종일 방송에 나오고, 나부터 투표에 기권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마이크를 쓸 수 있는 선거운동을 기다렸다. 28만 순천 시민 모두에게 이정현이 얼굴을 직접 보여주고, 순천 발전 구상과 정책을 내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겠다고 결심했다. 마이크 사용이 가능한 아침 7시에서 저녁 9시까지 유세차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배달시킨 도시락을 먹으면서 유세했다. 밤 9시 이후에는 길거리에서 엘이디 전등을 흔들었다. 처음 하는 얘기인데 목이 아프고 몸살 기운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도 주사를 안 맞은 날이 없었다.”

전남 순천 조례동에 있는 이정현 의원 지역사무실 벽면의 순천시 지도. 동네별 숙원 사업 및 민원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전남 순천 조례동에 있는 이정현 의원 지역사무실 벽면의 순천시 지도. 동네별 숙원 사업 및 민원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놀랐을 것 같다.

“사실 그것은 10~20% 정도의 마무리 작업에 불과했다. 그 전에 80%가 있었기에 당선됐다. 그것은 이른바 ‘국회의원 순천 모델’이다. 보선에서 당선된 뒤 내가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이다. 어디나 지역민이 국회의원에게 바라는 것은 첫째 중앙무대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지역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이다. 중앙에서 활동하는 것이나 예산을 많이 가져온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하기에 비교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세번째가 중요한데 이른바 코빼기다. ‘국회의원 뽑아놓으면 뭐한다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선거 때만 나타나는데…’라는 게 유권자들이 의원들한테 갖는 불만이다.

나는 이 코빼기에서 순천 모델을 찾았다. 이것은 보궐선거 때 약속한 대로 철저하게 심부름꾼, 지역의 머슴이 되는 것이었다. 김수환 추기경 말로 하면 서번트 리더십이다. 국회의원들은 이것을 하찮게 여기는데, 나는 지역의 머슴이 되는 게 다리를 놓겠다느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슴으로서의 자세, 심부름꾼으로서의 자세를 보였기에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선될 수 있었다.”

‘소부겸’(소통·부지런·겸손) 별명 얻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가?

“지난 1년 8개월 동안 순천을 오가느라 비행기를 241번 탔다. 순천에 내려오면 시민 누구에게 다가가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5일장에서 산 면바지와 면티, 잠바로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러고는 비서나 시·도의원들과 우르르 같이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철저하게 혼자 다녔다. 마을회관에 가면 할머니들이 얼른 못 알아보고 ‘보일러 고치러 왔소?’라고 묻는 게 다반사였다. 새벽 3시 반에 인력대기소에 가서 일거리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모닥불을 쬐면 사람들이 나중에야 누군지 알고는 깜짝 놀란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거리감 없이 대화를 한다. 완전 본토 발음으로 대화하려고 이 지역 사투리가 완벽하게 구사돼 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꺼내서 소리내어 읽기도 했다. 한마디로 나는 국회의원‘님’ 대접받기를 절대로 거부하고, 심부름꾼이나 머슴이 되려고 했다.

또 의원들이 보통 한곳에서 5분, 길면 10분 정도 얘기하다가 다른 곳으로 간다. 나는 반대로 했다. 한 마을에 가면 3~4시간 앉아서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놓고 대화를 했다. 이것을 막걸리 토크라고 했다. 온갖 얘기가 다 나오다 보면 어느 사이에 완전히 하나가 된다. 저녁에는 마을회관에서 코 골면서 주민들과 함께 자고, 아침은 이장 집에서 먹었다. 그러면 헤어질 때 악수 정도가 아니라 나를 끌어안더라. 할머니들과는 노인정에서 팔뚝맞기 화투를 치고, 무를 깎아 먹으면서 아예 같이 놀았다. ‘무시(무) 국회의원’이란 별명이 여기서 생겼다.

시내에서는 자전거 토크를 했다. 골목골목을 자전거로 다니면서 구멍가게도 갔다가 이발소도 들렀다가 하면서 모든 사람과 얘기를 나눴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소부겸’(소탈하고 부지런하고 겸손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런 식으로 주민들과 친해지다 보니 녹색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문재인 후보가 장바닥에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해도 안 통하더라.”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조례 호수공원에서 광장 토크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다. 그의 지역 사무실은 아예 ‘이정현 사랑방’이라고 이름붙였다. 각종 애로사항을 듣고 상담하거나 해결해주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11일 오후 기자가 들렀을 때도 중년의 남자 3명이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내건 관내 지도에는 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이 의원이 약속한 동네별 숙원사업 및 민원사항이 적혀 있다.

-여당 실세 의원으로 지역구 예산을 많이 따온 것도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

“지역 예산은 솔직히 여야가 똑같으면 뭐하러 여당을 하나. 할 말 다 하는 야당을 하지. 나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지역균형 논리 등을 갖고 정부 부처 관계자를 만나서 설득했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 비해 더 많은 예산을 따왔다. 이런 사업 실적이 쌓이다 보니 사람들이 저절로 1년8개월은 너무 짧아, 한번 더라는 얘기가 나오더라.”

-노인분들과 달리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잘 안 통할 텐데?

“그렇지 않다. 이번에 지역주의 구도가 허물어지겠다는 확신을 가진 게 뭔가 하면 젊은층의 반응이었다. 유세차량을 지나가는 30대 이하 여성 운전자 10명 중 7, 8명이 손을 흔들어줬다. 20대는 차가 멈추면 고개를 숙여서 예를 표하더라. 열심히 하니까 새누리당에 가장 거부감을 가지는 쪽에서 오히려 마음을 더 빨리 열더라. 진정성으로 대하면 이념도, 연령대도, 계층도 초월할 수 있다고 본다.”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하고 국민의당이 크게 이겼다. 지역주의 구도가 깨졌다고 보는가?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기는 빠르다. 솔직히 이번에 호남에서 당선된 사람이 대부분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무소속 당선자도 그 당에서 공천 못 받은 사람들 아닌가. 부산·경남도 지역주의가 다 변한 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대구, 부산·경남, 울산이 됐든 광주·전남이 됐든 지역분할 구도의 둑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금이 갔다는 데 대해서는 확신한다. 새누리당이 전국적으로 심판받는 분위기에서 순천에서 나를 다시 선택한다는 것은 일 잘하면 다른 당도 뽑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지역분할의 둑을 완전히 무너지게 하느냐 마느냐는 영남 지역의 야당 당선자, 호남의 여당 당선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지역분할 구도를 봉합하기 위한 접착제를 갖다 바른다든지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데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철저히 감시해서 심판해야 한다.”

국정교과서 막말파동 때는 휘청

실제로 순천 현지에서는 ‘당을 따지지 않고 일 잘할 사람을 찍었다’며 이 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연향동 기적의도서관 옆 놀이터에서 만난 주부 박미선(39)씨는 “밀짚모자 쓰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이 의원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며 “당을 떠나서 지역 발전을 이룰 사람을 찍었다. 주변의 젊은 엄마들도 다 그런 견해였다”고 말했다. 호수공원에서 만난 조기천(82)씨는 “내 평생 2번만 찍다가 이번에 처음 1번을 찍었다”며 “호남도 이제 당 말고 인물 보고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119명은 아예 보궐선거 이후 ‘이정현을 사랑하는 모임’(이사모)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이 모임을 주도한 김원빈(61)씨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국회의원은 순천에서 처음”이라며 “국정교과서 발언 파동 때는 이사모를 해체할까 고민했지만 반성하고 택시 시외요금제 개선 등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밀었다”고 말했다.

물론 상대 후보들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점도 주요한 승리 요인이라고 지역 정가에서는 분석했다. 익명을 요청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52)는 “노관규 더민주 후보는 정원박람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중도에 관뒀던 문제와 전국공무원노조를 탄압했던 전력 등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구희승 국민의당 후보는 녹색 돌풍을 담아낼 내공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막말 파동을 이 의원이 일으켰을 때는 시민 반발이 커서 안 될 줄 알았는데 극복하더라”며 “새누리당 지지율이 9%(비례대표)에 불과한 순천에서 44.5%의 득표를 한 것은 이정현 의원 본인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밝혔다.

순천/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_#18_무기력한 새누리당의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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