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기준 합의
민심과 동떨어진 선거구 획정
민심과 동떨어진 선거구 획정
국회가 23일 합의한 선거구 획정기준은 지난해 12월3일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가 잠정 합의한 내용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당시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는 의원정수 300명을 유지하되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 축소를 막기 위해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야당이 당론으로 고수해온 ‘비례대표 축소 불가’ 방침을 철회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야가 획정 기준에 공식 합의하기까지는 그로부터 80여일이 더 걸렸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사수’란 당리당략과 청와대의 ‘대통령관심법안-선거구제 연계처리 지침’ 이행에 집착한 결과였다.
선관위 ‘권역별 비례 도입’ 의견
‘과반’ 집착 새누리 철저히 외면
야당 할수없이 ‘비례성 확대’ 물러서 여야 사실상 12월 선거구 기준 합의
청와대 ‘관심법안 연계’ 압박으로
선거구 두달 공백 초유의 사태
고스란히 정치 신인·유권자 피해로
■ 어느 때보다 컸던 선거제도 개편 기대감 지난해 3월 여야가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전반을 손질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킬 때만 해도 표의 등가성과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2014년 10월 말,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2대1을 넘지 않아야 한다’며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선거구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구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김에 우리 선거제도의 취약점으로 지적돼온 비례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논의가 공론화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지난해 2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가까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하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냈다.
■ ‘과반 의석 무너질라’ 제도 개편 외면한 새누리당 제도개편에 대한 기대는 정개특위 출범 초기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하고, 야당이 요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새누리당이 현행 대통령제와 제도적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인구편차 조정으로 큰 폭의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한 농어촌 지역 의원들의 저항을 등에 업고 비례대표 축소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개특위에서 여야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고, 선거구 획정위의 선거구 획정 논의도 여야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획정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자기당 소속 이병석 정개특위위원장이 내놓은 비례대표 균형의석제마저 거부했다. 정당득표와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손 볼 경우 새누리당이 누려온 안정적 과반이 무너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막판 공전 주범은 청와대 선거구 획정 지연에 따른 안팎의 비판이 가중되자 여야는 결국 12월 초 국회의장 중재 아래 ‘지역구 253+비례 47’로 의석수를 잠정 합의했다. 야당은 비례대표 제도 개선 역시 새누리당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한 합의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비례성 확대’는 차기 국회 몫으로 넘기는 식으로 물러섰다. 시도별 지역구 의석수를 정하는 문제로 진통이 있었지만, 여야 균형 원칙에 따라 최종 합의까지는 큰 무리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노동관계법과 테러방지법 등 여야 쟁점법안 처리를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연계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선거구 획정안 입법시한인 12월31일을 넘겼고, 기존 선거구가 모두 무효화되는 초유의 상황이 2개월 가까이 지속됐다. 23일 여야가 획정기준에 합의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선거구 획정 지연에 따른 피해는 출마를 준비해온 정치 신인과 유권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과반’ 집착 새누리 철저히 외면
야당 할수없이 ‘비례성 확대’ 물러서 여야 사실상 12월 선거구 기준 합의
청와대 ‘관심법안 연계’ 압박으로
선거구 두달 공백 초유의 사태
고스란히 정치 신인·유권자 피해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