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처리 놓고 날선 신경전
비박 “거부권 행사 말아야”
친박 “거부권 행사가 당연”
의원 다수는 “사태 막아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부터)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정현 최고위원이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청와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동안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정의화 국회의장 중재안) 처리 문제를 두고 여권 내 계파갈등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벌써부터 공개적으로 설전을 주고받으며 날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대표적 비박계인 정병국 의원은 17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의 거부권 시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정 의원은 “청와대 비서들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글자 하나 고쳤을 뿐’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입법부를 비아냥거리는 건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 발언 직후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맡았던 친박계 이정현 최고위원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최고위원은 “법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고 던질 수 있느냐”며 청와대를 옹호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위헌적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라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의원들의 견해도 갈린다. 비박계 한 의원은 “지금 거부권을 행사하면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립은 물론 여권 분열이 불 보듯 뻔하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 친박 의원은 “청와대 요청은 ‘강제성 없다’는 걸 명확히 해달라는 건데,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중재안은 달라진 게 없다.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맞섰다.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당청·당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는 일치된 반응을 보였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거부권이 행사되면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칠지, 재의에 부치면 가부를 어떻게 할지 등을 두고 당내 계파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라며 “당내 의원 다수는 그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거부권이 행사되면 재의 절차 대신 자동폐기 수순을 밟도록 하는 것이 여권 분열을 막는 대안으로 그나마 쓸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재의 절차에 들어가면 청와대와 원내지도부 어느 한쪽은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 내년 총선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며 “자동폐기 수순을 밟아야 한다. 여권 분열보다는 차라리 야당 반발을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